KBS연중기획 16

권여선 봄밤

개인적이고 주관적 취향을 찾는 요즘 시대에 본질적인 진실과 사랑을 다루는 이야기가 마치 벌거벗은 채로 대면하고 직시한 당황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럼에도 인물들의 속을 투명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가장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임에 틀림없고 읽고 나면 자리서 쉽게 일어서기 어려운 신선하고 오묘한 이야기입니다. 봄밤이란 제목은 해석에 따라 다중적인 뜻을 내포할 수 있겠습니다. 따뜻한 계절이 시작되는 봄의 밤이란 뜻도 되고 아지랑이가 피어나던 낮의 열기가 식어 차분해지는 밤에 여전히 꿈틀되는 생명령이 느껴지는 시간적 의미이기도 합니다. 글 후반부에 나오는 주인공 영경이 소리 내어 울며 흥얼거리던 김수영 작가의 [봄밤]도 동의어인데요 사그라들어가는 수환과 영경의 삶의 희미한 불..

이인성 낯선 시간 속으로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 라는 책은 뫼비우스 띠처럼 반복되는 고뇌를 스스로 관찰하고 시간적 흐름대로 적은 자전적 서술적 소설이라고 정의하면 좋을듯합니다. 1980년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읽은 작품 중 가장 요즘 세대의 젊은 청년들의 모습이 데자뷔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또한 너무 깊은 사고가 창의성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청춘이 가질 수 있는 도전의 기회를 막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해봅니다.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면서 정신분열, 다중인격, 죽음 등의 정신과적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문학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선구적인 독창성을 갖은 소설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현실을 무시한 자의식을 서술했다는 악평을 받은 소설인만큼 호불호가 있는 소설임이 분명하고 너무도 주관..

성석제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작가는 통렬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거창하거나 대단한 사건을 통하지 않고 대중적이지만 소외된 농촌의 삶과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농촌 주민들의 삶의 방식과 구성원을 통해 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틀고 풍자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와 개인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사회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개인을 어떻게 다루고 억누르고 이용하는지를 해학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인과응보나 선악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사회의 시선을 대변한 농촌마을 주민들과 순응하고 반문하지 않는 약자를 바보로 설정하는 방식은 조금 구태의연해 보이지만 어이없이 말도 안 되게 뱉는 말로 약자를 배제시키고 죽음으로 몰아낼 수 있다는 결말은 살아가며 우리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모습의 반전이었기에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배수아 작가의 에세이스트의 책상 입니다.

지적이면서 직관적이고 시적이지만 미니멀하지 않게 작가의 삶과 사랑에 관한 견해를 적나라지만 따갑지 않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 작가는 일상을 특별한 화면에 완벽하게 담아내는 능력이 있다고 할까요 책장을 덮으면서 은밀하게 올라오는 희열감이 느껴지는 책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서두를 읽으면서 포기하거나 지루해하거나 뭐야라는 의문의 감정으로 갈등을 하게 합니다. 평범함을 거부한듯한 작가의 창작의 세계를 고민하면서도 아치 굴곡을 타 내려가듯 읽어 내려갑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많지 않고 글의 흐름도 여백이 많아 보이는데 장소와 시간을 거스르거나 다시 찾아왔을 때 머릿속은 투명하지만 뭔가 복잡하게 가득 차 있습니다. 소설은 공간과 시간을 함께 만지..

최은영 소설 쇼코의 미소 입니다.

어떤 사건이나 경험에 대해 우리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어 극히 조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에게 끔찍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쇼코의 미소는 누군가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나도 누군가가 되어 이입되고 인물과 자신을 대칭시켜 볼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큰 슬픔이 느껴졌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지 않고 무엇이 문제일까를 생각하게 했기에 주저 않을 만큼의 사색보다는 타인의 마음을 상상하고 입장 바꾸기를 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소유에게 쇼코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한국에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학교의 교환학생으로 와서 일주일간 소유의 집에 머물게 된 쇼코, 늘 그렇든 장소와 시간보다 중요한 건 누굴 만났고 어떤 영향을 받..

2021년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최은미 작가의 여기우리마주

작가가 COVID-19에 대한 시선을 어디에 두었는가를 보고 소설을 볼 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공감하며 읽었고 나 스스로가 기록하지 못한 것들과 감정에 대한 정리의 결과물 같은 소설이었습니다. "나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마음 붙일 곳 없는 낮에 대해서, 눈을 붙여도 잠들 수 없는 밤에 대해서, 남편과 노동을 나누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에너지를 뺏긴 채로 '행복한 아이를 키워내는 다른 여자들'과 편하게 사는 다른 여자들'을 가위눌리듯 떠올리던 것에 대해서. 우리가 서로를 욕심내기 시작한 순간부터 어떻게 다시 고립되어갔는지 , 그 외로웠던 봄에 대한 얘기를." -30P 주인공이 딸 은채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천연비누 제작이 취미에서 직업으로 확장되어 비누공방을 2020년 3월 봄..

우리시대의 소설 17번째 도서 전성태 소설집 늑대

몽골 초원 설정은 우리가 겪어 보지 못한 독특한 경험이고 신비하기까지 한 설정이지만 이 설정마저도 현실이 내포된 실존적인 글이었습니다. 전성태의 단편 모음집 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욕망, 배짱, 금기, 유산, 자유, 사랑, 열망, 파멸, 동성, 간절함, 이데올로기 등등... 설정은 심플하지만 내포하는 주제가 많다 보니 글이 끝나도 상상에서 이야기를 이어 만들게 되는 폭이 넓은 작품세계를 맛보게 됩니다. 전성태 작가의 절제된 문체에 열려있는 시선이 매혹적입니다. 특히 단편소설 중 `늑대`는 격동기 몽골이 배경인 작품입니다. 초반에 화자가 자신의 삶의 변화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변화하는 현실을 다루면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우리의 삶이 어디까지 돌아가..

달려라, 아비 김애란 소설집

이 작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졌구나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독특한 화법과 블랙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문체에 공감하는 사회적 현상과 문제까지 무겁지만 가볍게 넘기려 애쓴 문제의식이 전체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달려라, 아비는 김애란 작가가 20대에 쓴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뒷장에 쓰인 [새로 쓴 작가의 말]에서 추정할 수 있는 나이를 손꼽아 보니 지금은 40대 초반입니다. 20대에 이렇게 창의적으로 글을 쓴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한참을 상상해 보았답니다. 꽤 쿨하고 굉장히 강한 창작자라고 생각했던거 같습니다 달려라, 아비는 엄마와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엄마손에서 성장한 외로움을 대변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꽤나 무거운 주제임이 분명합니다. 엄마와 나는 분리된..

우리시대의 소설 황석영 장편소설 손님 입니다

이번에 소개된 우리 시대의 소설 황석영 작가의 손님은 개인적으로는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습니다. 표지도 우울하고 내용은 더 참담하고... 글을 쓴 작가도 쓰는 내내 너무도 힘들었고 다시는 이런 소설은 쓰지 못할 거라 인터뷰했을 만큼 근대사에 왜곡된 역사와 바닥까지 드러낸 인간을 주제로 풀어낸 깊은 이야기였음에도 다양한 시점의 변화와 은유적인 제목부터 개인적으로는 가장 몰입도가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민담 리얼리즘이라고 말하는 그의 소설 밑바닥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잠겨있는데 작가가 결국에는 슬픔의 원인과 본성을 자각해가는 이야기 였습니다. 그 슬픔은 자신들이 누군지, 시대 배경을 등에 지고 왜 그래야 했는지 정확히 모르는 데서 오는 무지와 광기의 슬픔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슬픈 감정은 정서적인 ..

김 숨 장편 소설 한 명

소설의 시작은 자신이 성노예 위안부였음을 끝내 밝히지 않고 숨어 사는 한 명이 티브를 통해 다른 위안부 할머니가 세상에 한 명 밖에는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하는 장면입니다. 세상에 남아있는 한 명이 유일한 사람이라는 소식에 "여기 한 명 더 살아 있다" 말하는 93살의 또 하나의 한 명이 과거와 현실을 오가며 역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소설 형식이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했고 인용한 증언들의 출처는 본문에 미주로 달아두어 더 현실적인 우리네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야기했다고 작가는 쓰고 있습니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일본 건국 이후 최대의 패배를 안겨준 전쟁으로 전쟁의 피해는 어마어마했지만 복구되었고 산업은 발달되어 부흥기를 맞은 일본에 전쟁의 상처는 보이지 않습니다. 전쟁의 복구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