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 라는 책은
뫼비우스 띠처럼 반복되는 고뇌를 스스로 관찰하고 시간적 흐름대로 적은 자전적 서술적 소설이라고 정의하면 좋을듯합니다. 1980년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읽은 작품 중 가장 요즘 세대의 젊은 청년들의 모습이 데자뷔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또한 너무 깊은 사고가 창의성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청춘이 가질 수 있는 도전의 기회를 막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해봅니다.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면서 정신분열, 다중인격, 죽음 등의 정신과적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문학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선구적인 독창성을 갖은 소설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현실을 무시한 자의식을 서술했다는 악평을 받은 소설인만큼 호불호가 있는 소설임이 분명하고 너무도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이야기의 전개를 이해하기에는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점과 인물이 다변화하는데 글에서 주는 공허함이 공포가 생길 것 같은 불안감도 줍니다. 인물의 일방적인 시선이 주는 불길한 느낌에 조마조마하게 따라가는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읽게 되는 책입니다. 작가는 오롯이 자아에 대한 집중적 이해와 흐름에 따라 글을 쓰고 독자는 다변화하는 자아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게되면서 주위가 분산되는 효과를 갖게 됩니다. 글 전체에 인물, 내용, 장소가 사실적으로 쓰였지만 전체 모습은 추상화된 이미지들이 대립하고 분열합니다. 그 분열의 과정을 지켜보는 나는 호기심에 살펴보다가 보고 싶지 않은 결말을 보기도 하고 숙연한 감정과 혼란스러운 사고로 책을 되돌려 다시 살펴보기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소설 속 '나'는 아버지의 죽음에 일병으로 의가사 제대, 군 복무 중 애인의 이별통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군생활 등 겉으로 보기에는 개인의 위기처럼 보이지만 인간 내면의 인물과 인물 사이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드러내는 소설입니다. 관계 맺는 과정에서 어긋나 상처를 받고 기댈 수 없는 답답함과 무능함에 포기한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낼 때마다 다른 나, 그가 등장하는데 그 인물을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못하고 상상하거나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엉뚱한 생각으로 나와 그에게 호감을 얻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회피하는 과정이 반복되는 모습니다. 관계의 무력함이 그대로 표현되는데 인간관계에 위기로 드러나는 흔적들입니다.
수시로 표현되는 다양한 시점의 인칭들 나, 그 , 병정, 너는 모두 분열된 자신이지만 자존감, 자아정체성 등과는 다른 의미의 자신에 대한 표현입니다. 자신을 인식은 하지만 믿지 못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시 공격하는 또 다른 공격적이고 삐뚤어진 자아의 공격을 받는 주인공이 안쓰럽고 마냥 남의 모습이 아닌것 같아서 공감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자아의 환영속에서 울고 포기하고 묶인 자신을 다시 회유하고 통합해서 현실의 "그"로 되돌리고 서울로 돌아오려는 모습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글이 주는 불편함들이 글의 마무리에 갖는 의지의 표현에 마음 놓아집니다.
다소 어렵고 복잡하고 이기적인 책이었지만 모든 소설에 경계와 제한이 없음을 받아들인다면 책을 소화하는데 어려움은 사라질 거라 생각하며 추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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