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검색하다 보니 문학과 지성사에서 소개한 1980년 광주를 다룬 소설 3편 임철우 [봄날], 한강 [소년이 온다] 그리고 정찬 [완전한 영혼]이 있습니다. 세편의 소설 모두 우리 시대의 소설에 소개되어 운 좋게 순차적으로 읽다 보니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룬 작가들의 시선에서 그날을 어떻게 쓸 것인가, 무엇을 쓸 것인가, 왜 쓰려하는가를 보여주는 다양한 관점을 확인해 봅니다.
정찬의 완전한 영혼은 인간 안에 있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 중 당신은 어떤 모습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인간탐구에 관한 소설이었습니다. 선처럼 보이는 악, 평화처럼 보이는 분노, 진실처럼 보이는 왜곡된 사실... 앞선 두 소설이 5.18 광주 민주화항쟁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그리며 쓴 소설이라면 완전한 영혼은 그날의 기원을 찾아서 근본적인 폭력을 보고 폭력의 근원인 권력의 내부를 파헤치면서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또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주관적이고 비형식적인 관념적 내용을 그대로 서술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완전한 영혼에 수록된 다른 단편들도 사건은 광주항쟁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지만 다른 각도에서 본질적인 인간에 대해 탐구를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글의 인물들에게 새겨진 흔적과 기록을 찾아 자신의 머릿속에 문신을 새겨 넣듯이 추상적인 관념과 인간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역사 속 폭력과 권력을 시대와 삶에 반영하여 집요하게 쫒고 있었습니다. 쫒는 과정은 번역이 필요했고 그 번역을 객관적인 기록만으로는 서술해 내는 것이 부족해 주관적인 새김과 원론적인 분석과 철학적인 접근 방식을 택한 걸로 보입니다.
장인하, 지성수, 나란 인물이 맟닿았던 공간은 다르지만 공통적인 이념을 갖는다는 전제를 갖고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던 해 군사정권이 지속되는 투표가 진행되고 민주화를 갈망하는 진보세력들은 좌절하고 숨죽여야 하는 시대에 나는 음울한 폭음과 시간 죽이기를 하는 은둔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때 지성수란 선배를 통해 소개받은 출판사에 출근하면서 장인하란 인물을 알게 됩니다. 1980년 광주에서 군인들의 폭행으로 청력을 잃은 장인하란 인물을 통해 나와 장인하의 시간에서 비슷하게 대면하고 있는 죽음과 폭력과 권력에 대항하는 모습에 대해 다른 접근방법과 인간성을 회복하는 과정의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몸안에 칼이 직접적으로 들어오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칼과 같은 권력과 죽음의 공포를 대면했고 대면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나는 경계하고 두려워하면서 저항하며 위기에 무너지는 과정들을 겪고 분노하고 한없이 작아지지만 장인하는 평범한 인쇄공 식자공으로 이데올로기나 세력을 전혀 모르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폭력과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을 저지하고 맞섰던 온전한 인간적인 면을 가진 자입니다. 상대가 울 때 조건 없이 같이 울어주는 사람, 편견 없이 누구나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장인하였습니다. 이념이나 배경을 계산하지 않고 공정과 상식과 정의라는 순수한 자만이 지켜내고 실천할 수 있는 마음과 자세를 가진 자가 장인하였습니다. 순간 눈에 보이는 참사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기를 든 군인들에게 안된다며 다가설 수 있고 군인들의 폭행으로 청력을 잃고도 그 상황이 다시 온다면 군인의 무기를 빼앗으려 다시 다가갔을 거라는 장인하입니다. 사건을 계기로 광주항쟁에 직접 뛰어들게 되고 희미하게 울음처럼 들려오는 소리 속에 폭력에 저항하며 자신들을 지켜내다 목숨을 잃어가는 자와 잃은 자를 보고 오열하는 가족들의 소리를 기억합니다. 갑작스러운 고통과 함께 아예 청력을 잃을 후에도 광주항쟁 그날의 소리를 떠올리며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순수한 영혼의 모습이었습니다.
너무도 쉽게 우리는 힘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말합니다. 장인하 그도 힘없는 인간이었다고.
광주항쟁은 힘없는 이들은 쉽게 무너뜨리고 쓸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자들의 만행이었고 그들은 숨기고 그날의 기록을 감추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폭력과 비리로 감추어진 세력은 드러나고 그때의 잔인하고 무차별했던 무력과 폭력에 맞서서 저항한 사람들의 단순했지만 순수했고 명확했던 그들의 신념어린 모습을 다시 기억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완전한 영혼에 같이 수록된 마지막 소설 [얼음의 집]에 내용중 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난에는 자신의 생명을 키우는 생장점이 뿌리 끝부분에 있다. 특이한 것은 난의 몸에 신생 조직이 없다는 점이다. 식물이 상처를 입더라도 절로 아무는 것은 신생조직 때문이다. 난은 이것이 없기 때문에 생장점에 상처를 입으면 아물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도 난의 생장점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박해하는 자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는다. 흔히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상처가 씻겨 나간다고 말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가슴속에 소리 없이 쌓인다.'
장인하, 지성수, 나와 같은 광주항쟁을 통해 직접 /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상처를 여러 단편에서 유의미하게 연결하여 작가는 여러 각도로 접근하여 이야기 했고 작가는 우리가 가진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그 안에 더 많은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장인하란 인물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난의 이야기도 아름다운 시각과 서술적 표현을 통해 인간의 깊은 내면과 본질을 직시하도록 하면서 인간의 순수한 영혼에 대한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기억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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