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우리시대의 소설

공선옥 장편소설 오지리에 두고온 서른살

꼬마대장 2022. 2. 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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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꼭 한번 읽어보라는 말을 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여자라는 대상이 한 시대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살면서 갖는 쓸쓸함, 우울함, 인간 삶의 실존적인 테마를 리얼하게 이야기하며 마음을 솔직하게 그려내고 표현합니다. 서른 살의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페미니즘을 빌리지 않고 여자라면, 엄마라면 모두가 알 것 같은 상처는 읽는 사람 누구나 함께 공감하고 치유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체옥과 은이는 서른 살이 되어 고향에서 우연히 만난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어릴 적 환경과 성격 차이로 우정과 사랑의 관계가 미묘한 경쟁심으로 얽힌 친구사이입니다. 전형적인 삼각관계를 갖고 있는 사이이기도 하지만 구질구질하고 세련되지 못한 조합으로 흥미를 주기 위한 자극적인 글은 아닙니다. 시대의 부조리와 여성의 위치와 역할이 대두 대기 시작하는 시대에 여성의 생존권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의도가 자연스럽게 녹아 쓰여 있습니다.
오지리는 두 여성이 최종 목적지인 미래에 홀로 서서도 당당해질 수 있는 여성의 삶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중간 지점과 같습니다. 체옥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을 당하고 원하지 않는 남자에게 폭행당하고 감금되어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에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가지고 고향 오지리로 돌아와 자신의 밑바닥과 무능함을 확인합니다. 은이도 서로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자를 끝없이 기대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고향 오지리로 돌아옵니다. 은이 역시 남편 상혁의 사랑이 거짓이었음을 확인하고 며느리로서 환영받지 못하는 시댁에서 정신적 학대를 받으며 자신의 위치를 되짚어 보게 됩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절망감만 느끼게 되는 고향입니다.
당당해지려 노력하지만 주눅들고 힘없는 여성의 모습입니다. 체옥은 자신의 절망감을 돌볼 겨를도 없이 배고픈 아이와 병든 노부를 먹이기 위해 일을 하고 구걸하고 끼니를 채워주기 위해 몸을 팔기까지 결심하는 엄마이자 딸의 모습니다. 은이는 부유한 지주의 며느리라는 허울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일 뿐 시댁에서 수시로 배고픔과 허기를 느끼고 고픈 배를 움켜쥐며 음식을 차리지만 정작 풍족하게 먹지 못하고 내적 갈등으로 배고픔은 계속됩니다. 평안과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찾아야 하는 곳이 고향이어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체옥과 은이에게 고향은 미화되지 않고 희망을 찾아 벗어나야 하는 곳으로 대변됩니다.
글의 결말은 추측은 되지만 정확히 확정 짓지 못하고 읽게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폭력과 욕설로 치를 떨게 하는 남편에게서 벗어나 씩씩하게 우뚝 다시 서야만 하는 독자의 바람에 한껏 기대하고 지켜보았던 체옥은 아이를 매개로 반복되는 지긋지긋하고 무서운 일상임을 알면서도 남편을 따라갑니다. 그에 반해 은이는 시대의 부당한 대우와 사랑 없이 연민으로 결혼했던 남편을 떠나서 홀로서기를 위해 떠나지만 결국 마지막 장면에 터미널 개표소에서 서울서 돌아오는 남편을 보며 결론을 추측하게 하며 마무리됩니다. 마지막 글에서 작가는 현실을 직시하고 여성 자신의 자존감과 권리를 찾아가는 여성을 그리면서도 현실에 묶일 수밖에 없는 여성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체옥은 절망의 끝에서 잡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냥 자유롭지 못합니다. 은이도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말하면서도 마지막 돌아오는 남편 상훈의 모습을 바라보며 흔들리는 모습에서 여성만이 가질 수 있고 표현되는 섬세함과 아름다움과 지고지순함을 동시에 표현하며 여운을 남깁니다. 여성이 갖고 있는 본능적인 아름다움이 애쟎하기까지 합니다. 그녀들에게 희망은 있는 것인지, 희망을 가질 수는 있는지 계속 지켜봐야 하는 책임감을 갖게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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