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인 소설집의 제목들을 살펴보면 우선 단순합니다. 단어로 읽히는 제목들에서는 숨이 막힐 것 같은 긴장감도 없고 반전의 어떤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글들은 자신의 색깔을 갖고 자신이 하고 싶은 펑범한 사람들의 저 깊은 밑바닥 이야기까지 읎조리듯 무심한 듯하고 있어 하나하나 되짚어 보게 됩니다.
실제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썼지만 있는 그대로를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한 줄 한줄 거르고 걸러 증류하듯 써 내려갔을 서정인 작가의 소설들입니다. 인간이 가진 실존적인 질문들을 이야기하고 혼돈스러울 수 있는 의식세계를 사실적으로 나열하여 글 속 인물들은 우리가 느낄 심정 고민 감정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번에 우리 시대의 소설로 소개된 [강]은 너무도 많이 알려진 대표 소설입니다. 소설의 인물은 늦깎이 대학생 김 씨, 세무서 직원 이 씨, 초등학교 선생님 박 씨와 서울집이라는 술집 작부입니다. 세명의 남자는 일행으로 군하리 석촌 누군가의 집안 혼인식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며 공감대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돌아오는 길은 차가 끊겨 서울집에서 술을 마시게 됩니다. 대학생 김씨만 피곤함에 여인숙에서 먼저 잠을 청하는 흔히 있을법한 평범한 풍경입니다.
그럼에도 서정인 작가의 소설이 지적이고 체계적인 사고의 산물이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인물들이 가진 혼돈과 시선의 차이를 상황이나 환경에 의해 구분짓지 않고 본능적인 입장을 대변하듯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말하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세명의 남자는 일행이지만 공감되는 주제도 없고 살아온 방식도 다른걸 알 수 있습니다.
대학생, 교사, 세무서 직원, 작부의 각각의 직업이 일차적으로 그림의 명암처럼 인물을 그려주고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인물의 성향을 서술하고 그들이 가진 내면의 이야기를 합니다.
버스를 타고 혼인집으로 서울집과 여인숙으로 여정과 축하 그리고 술을 나누는 시간은 오롯이 혼자 가진 시간이 아님에도 사람들과 함께 있는 순간에도 개개인에게 갑작스럽게 올라오는 자괴감과 무력감은 분리되지 않고 박제된 죄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걸 볼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을 좀더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표현한 부분이 마지막 대학생 김씨와 1등을한다는 우등 초등학생의 대화와 독백입니다. 천재소리를 들으며 열심으로 앞만 바라보며 살아와 지식인 소리는 듣지만 무능하고 열등한 현재 자신의 모습을 여인숙집 초등학생에게 투영시켜 복잡한 감정을 되뇌이는 모습은 독자에게도 그대로 전달됩니다.
그렇다고 마냥 비극적이지 않습니다. 지식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여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희망을 놓치 않는 서울집 작부여인은 대학생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에 김 씨의 잠자리를 돌봐주고 이부자리를 정리해줍니다. 돈이 많고 적고 많이 배우고 배우지 못함이 삶을 살아가고 위로 받는데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위로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이 서정인 작가가 말하는 강 같은 우리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또한 잠자리를 봐주고 나오는 작부여인의 발자국을 소복히 덮어주는 눈을 묘사하는 부분은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을 정화하여 다시 내일을 맞이하고자하는 우리네의 모습입니다.
서정인 작가는 자기가 만든 세계가 확실하게 있습니다. 작가의 작품은 독자가 들어갔다 나갔다 하며 생각할 수 있는 범위도 넓고 유연하여 소외된 사람, 부족한 사람들이 표현하는 밑바닥 감정들도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다양하게 알 수 있게 서술해 주는 전지적이지만 객관적인 부분들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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