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우리시대의 소설

김영하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꼬마대장 2022. 2. 26. 22:05
반응형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있다


사람의 깊은 곳에 건들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이곳이 건드려지면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불편한 진실'이라고 표현하면 맞을까요? 글을 다 읽고 나면 그 '불편한 진실' 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두께감 적은 책이지만 읽고 나면 한참 여운이 남고 큰 반전이나 상황의 역전 없이 잔잔함 속에 잔인함이 묻어나는데 마냥 눈 가리고 보고 싶지 않아 외면하는 마음은 아닙니다.
글에 '나'는 상담 및 죽음 도우미이며 작가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고 아름답고 편안한 죽음을 맞을 방법을 같이 공유합니다. 의뢰인과 고민을 공감하고 죽음을 공감하며 죽음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모습입니다. 의뢰인의 복잡한 마음에 상담자로서 해 줄 수 의견과 환경을 설정해주면 사람들은 흔들리고 흔들림 속에서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면 가장 나다운 죽음의 방식을 결정하고 실행하게 됩니다. '나'는 죽음을 준비하는 의뢰인과 상담을 시작하면서 여행을 다녀오고 이후 의뢰인을 소재로 관련된 글을 쓰는 모습니다. 범죄를 공모하는 공범 같은 감정을 느낄 법도 한데 정확히 선을 긋고 객관적인 시선에서 자신의 의뢰인을 대면합니다. 글을 사람의 성격으로 표현해보면 '나'는 과감하지만 센스티브하고 직설적이지만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가진 완벽한 사람은 아닐까 생각되기까지 합니다.

글에 나오는 나의 여성 의뢰인 유디드와 미미는 힘든 우리의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같은 모습처럼 보이지만 개개인의 속사정을 보면 한없이 복잡합니다. 그녀들의 소외감, 불안, 외로움 등의 욕구를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본능인 성과 외모로 관련된 스토리로 표현한 건 독자들에게 가장 본질적이고 충격적인 모습을 통해 우리가 가진 문제점을 인식시키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글에 남동생 k도 나오는데 동생은 죽음을 맞는 내용으로 연결되지 않지만 내재된 욕구를 레이싱으로 표출하는 같은 맥락의 고민을 갖고 사는 또 다른 우리 모습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복잡함을 김영하 작가는 꽤 지적이고 세련되고 신선하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과 소재는 새롭지만 다른 소설과 같이 낮고 소외될 수 있는 자리에서 감정 고립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회의 문제점을 짚어내는 구성과 인간의 존엄함을 배제한 죽음에 대한 결정을 쉽게 돕는 인물 나의 직업은 한번 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내 위에 신이 있어 두려움을 알 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뱀의 꼬임에 넘어간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아담에게도 건네 같이 먹음으로 두려움과 죽음의 고통을 알았듯이 인간의 영역에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소재로 한 글은 픽션 또는 논픽션을 떠나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라의 죽음

글의 첫번째 장부터 소개된 다비드의 유화 [마라의 죽음]입니다.
'그림의 표정에서 한 인간의 내부에서 대립하는 이 모든 감정들을 다비드는 죽은 자의 표정에서 구연했던 것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죽음은 죽임을 당하는 수동형과 동시에 죽음을 선택하여 스스로 행동할 수도 있는 능동형 주제입니다. 아름다울 수도 안타까울 수도, 비참할 수도, 원통할 수도, 당연스럽게 생각될 수도 있고 선택은 했지만 그에 결과와 과정에 대해 죽은 자도 남은 자도 더 이상 확장하는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이 부분을 충분히 성찰했고 스스로를 구원해 줄 수 없다는 부분에 초점을 두고 죽음을 대하기 전 인간들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과 관계를 갖는 인생을 잘 살아내기를 바라며 글을 쓴 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마지막 페이지
'비엔나 여행에서처럼 그곳에도 미미나 유디트 같은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라고 말합니다.책에 쓰인 지옥, 지루한 겨울, 자살 등의 단어들에서 단절, 무료함, 희망의 사라짐 등이 느껴집니다. 마지막 한 줄을 위해 글 전체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변화의 욕구를 끝없이 갈망하는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계속 유디트와 미미를 만날 수 있고 이미 내가 유디트일 수도 미미일 수 있습니다. 글 속 주인공과 의뢰인들 동생 K와 같이 우리는 포장만 다를 뿐 이미 같은 문제점을 갖고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마냥 살아 있음을 걱정하고 비관할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다 그런 게 아닐까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