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우리시대의 소설

황정은 장편소설 백의 그림자

꼬마대장 2022. 2. 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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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장편소설 백(百)의 그림자

내가 처음 접한 황정은 작가는 자신의 글을 나와 같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지만 같은 시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황정은 소설가의 이야기를 더욱 세심히 자세하게 들여다 보고 집중하게 되는가 봅니다. 좋은 소재이고 반드시 알려야 하는 사회적 주제라 해도 누군가 관찰하고 투자하여 내 의지를 표현할 때 작품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하게 바라보지만 날카롭게 타협도 할 줄도 알아야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황정은은 선은 잘 지키면서 사회 부조리와 구석으로 몰린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사이에서 똑같이 평범하게 피어날 수 있는 연인들의 사랑이야기까지 격하지 않고 무심한 듯 간결하고 힘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이 참 시적이다 라고 느끼는 부분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그림자가 살아서 일어나면 사람의 생각을 조용히 어지럽혀 무기력이나 우울감에 빠지게 해 죽음에 가까워지게 한다고 합니다. 단독으로 살아 움직이거나 분리되어 주체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마구 휘저을 수 있다는 그림자 환상은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 아픔, 곤경 또는 외부의 위협을 그렸겠구나 생각해 보며 참으로 창의적이면서 공감 갈 수밖에 없고 누구나 쉽게 그려볼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간결하게 이어지는 은교와 무재의 독특한 화법의 대화도 시적인 음률과 규칙, 리듬감을 느끼게 됩니다. 첫 번째 장 [숲]에서 길을 잃으며 은교는 그림자를 따라가게 되는데 이때 무재가 은교를 부릅니다. 무재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은교는 다시는 그림자가 일어나도 따라가지 말라는 간략하고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같이 숲을 벗어나고 마지막 장 [섬]에서는 길도 잃고 자동차의 고장으로 어려워진 무재의 마음을 대변하는 무재의 커지는 그림자를 잠잠하게 누르기 위해 은교가 조용히 손을 잡아 함께 걷는 상항과 어두운 길을 걸어 되짚어 돌아오게 되면서 노래를 부를까요 하고 말하는 부분은 같은 맥락으로 리듬감 있게 그려지는 스토리로 수채화 같습니다. 철거 대상 건물들 또는 철거 지역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소재를 구체적으로 가동 나동 다동..으로 표현하고 상가 사이 좁을 골목의 대표적 판매물품들을 나열하여 그림을 그려 보여주듯 지나가는 모습에서도 리듬과 회화적 감각이 많이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철거 대상의 상가 내에서 수십 년 일해 온 상인들의 모습을 느리고 구체적으로 그려 쓴 부분에서는 그들의 소신과 판매 철학까지 볼 수 있는 단순하고 깊이 있는 묘사가 매력적이었습니다.
반면 소설은 슬픈 이야기입니다.
마뜨로슈까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트로시카라고 알려진 러시아 인형입니다. 몇 겹씩 같은 모양의 인형을 벗겨야지만 가장 안쪽에 마지막 인형을 볼 수 있습니다. 큰 기대를 갖고 벗기고 또 벗기고 결국에 나오는 인형은 아주 작은 같은 인형입니다. 자세히 보아야만 보입니다. 같이 세트로 있기에 존재감을 갖게 됩니다. 소설 속 은교는 실수로 무재의 마트로시카 제일 안쪽의 작은 인형을 으깨 부시게 되는데 미안해하는 은교에게 무재는 있던 것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재는 본래 없던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작은 인형을 인간의 공허함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기대를 갖고 열심을 내보지만 결국은 무의미하게 느꼈을 삶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많이 서글퍼집니다.

지역개발을 위해 수십년 된 상가를 철거하고 새로 계획한다는 것은 빛이자 장벽과 같습니다. 공원이 조성되고 새로운 주거환경으로 탈바꿈하면서 깨끗해지고 좋은 환경이 제공됩니다. 하지만 평생의 삶의 터전으로 삼아 일해 온 사람들에게 얼마간의 보상금에 자신의 청춘과 열정을 다 바쳐 일해온 터전을 옮기는 이주는 장벽입니다. 더 좋은 환경, 깨끗한 환경으로 바뀌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한 자리서 들고나던 사람들의 흔적과 추억으로 기억되는 순간들을 모두 버려진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슬퍼집니다. 소개되는 유곤, 오무사, 폐지 줍는 노인 등 인물들의 사연이 등장하는데 모두 철거 대상의 상가 주변에서 일어났던 기억이고 역사이고 이 지역 사람만이 알고 있는 사건들이자 삶이었습니다. 다양했던 백(白)의 그림자들이 움직였던 현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감정의 기복이 일어날 수 밖에 없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주 대신 폐업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크게 관심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세상에 가려진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 반발심을 가질 수 있는 짙은 호소력의 글보다는 조용하게 힘을 실은 글을 썼겠구나 다시 생각합니다.
쉽게 잊혀질 수 있고 외면받는 세상과 화려하고 보기 좋은 세상의 공통 연결고리를 평범한 연인들의 사랑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은교와 무재의 사랑은 인류애이기도 하고 지역사회에서의 배려와 관심이기도 합니다. 서로의 힘든 부분을 말없이 이해하고 배려하고 단순하지만 다정하게 표현해주는 잔잔한 사람 사이의 사랑을 연인이라는 소재로 대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사랑이 아직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들의 작업장이 철거되는 현실에서도 두 연인의 서로에 대한 배려와 관심 그리고 따뜻한 말 한 미디가 살아갈 힘을 주고 사람들을 혼동스럽게 하는 그림자들이 승해지지 않도록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 [섬]에서 은교는 무재의 그림자가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하고 조용히 손을 잡고 노래하며 함께 걸어가는 모습에서 그 원동력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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