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깔깔거리며 유쾌하게 읽고 나 뒤돌아서서는 괜스레 무색해져서 작가 사진을 다시 쳐다보게 됩니다.
성지향정체성에 관련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이 책을 읽고 꼭 한번은 작가에 대한 검색을 해 보았을테고 박상영 작가의 성지향정체성에 대한 확실한 내용을 찾아야 속이 후련했거나, 동병상련을 느낀 작가에게 우린 같은 편이네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겠구나 싶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글 속의 주인공과 같이 성지향정체성을 고민하는 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꽤 괜찮은 사람이고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사랑을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겠구나 생각해 봅니다.
보통 성지향정체성에 관련된 기사나 도서를 보게되면 주로 차별을 없애고, 세상의 편견에서 자신을 지켜내고 자신 있게 사회에 귀속되어 삶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조금은 암울하고 비주류 인물에 대한 해석이나 이해를 요구하면서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니 우리가 지켜주고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처음부터 사회 통념적인 경계선을 바로 무너뜨리고 시작을 해서 휴머니즘적인 사랑과 만남과 이별의 삶을 그려냅니다. 어색하지 않게 과감하고 현장감 있는 문체는 뺏어 오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고 구성집니다. 보는 시선에 따라 어려운 주제가 현실속에서 얼마나 일상처럼 다가올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첫 소설 [재희]부터 남자를 더 좋아하는 생물학적 남자와 이성 남자를 너무 좋아하는 생물학적 여자가 동거라는 설정부터 색안경을 낀 시선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에서 유머스러운 대화와 진심 격려하고 걱정하는 동거인에 대한 이야기는 동성애자인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의 갈등을 보여 직접 세상질타를 받는 설정이 아닙니다. 조금은 비호감스럽지만 안쓰럽다가도 누구나 있을법한 생활현장에서의 유머스런 대처 등은 주인공이나 나나 별반 다를 게 없고 오히려 나도 저랬는데, 나 같으면 이렇게 할 거야 하며 파이팅을 보내게 됩니다. 서로 다른 이성의 동거라는 특별할 수 있는 설정은 여성과 남성의 정체성과 확인하게 되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남녀에 대한 사회통념적인 차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동거를 하는 재희가 낙태를 했다는 이야기, 재희가 결혼할 때 준비한 신혼집이 실제는 재희의 부모님이 도와주신 집이지만 동기들 사이에는 남자 쪽이 부자여서 좋은 신혼집을 제공했다는 내용 등은 알게 모르게 동성애자 남성보다 대놓고 여성이 차별받는 사회 편견의 모습입니다.
연작이라 어느 소설을 선택해서 읽어도 같은 인물, 비슷한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튀어나오는데 무리가 없고 아주 매끄럽습니다.
두 번째 소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에서는 동성애를 느끼는 상대방 남자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수시로 혼동하면서 주인공을 애태우는 내용이 일반 이성 간의 사랑과 다르지 않구나 생각하게 합니다. 회 한 접시를 먹으면서 티키 타카하는 모습, 누군가를 온 마음과 몸을 다해 사랑하고 고뇌하는 모습, 구질구질하게 서로에게 질척대는 연애의 색깔까지 공감합니다. 한편으로 아들이 동성애 자라는 걸 발견한 엄마가 대처하는 모습은 세상의 편견과 가시 돋친 반응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공을 미치게 만드는 시선과 엄마의 행동은 아들이 상대방 남자를 더욱 그리워하고 찾게 만듭니다. 그런 엄마에게서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부분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또한 자신의 성지향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하고 결국 자살까지 시도하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가 건네는 말도 인상적입니다. 무겁지만 마냥 진중하게 마무리하지 않는 결말이 왠지 가슴이 찡합니다.
세 번째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입니다. 제목이 너무 거창한 게 아닐까 고민했다는 작가의 말을 떠올리며 이만한 제목이 없었겠구나, 참 적절한 제목이다 생각해 봅니다. 일상적인 사랑이야기이고 동거 이야기인데 이성이 아닌 동성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의 모습은 어느 사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부족함을 채워주려 했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다른 인생을 살아온 신혼부부가 가정을 꾸리듯 두 인물이 서로에 대한 단점을 지적하기도 하고 보듬기도 하는 모습은 딱 연인이고 부부입니다. 주인공이 에이즈라는 질환을 갖고 있음에도 받아들인 모습도 일반인들이 쉽지 않은 사랑을 시작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미래를 위해서 떠나보내고 그 빈자리를 기억하는 모습은 네 번째 소설 [늦은 우기의 바캉스]에서까지 연결됩니다. 이별에 대한 외로움을 아픔과 성숙으로 포장하지 않고 원초적인 자유분방함과 일반적인 연인들이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그려내어 잔잔한 감동까지 주고 있습니다.
사랑의 본질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상대방을 더 좋게 보고 더 아름다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기억하려는 감정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박상영 작가 글을 되새김질해보면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쿨하고 심도 있게 다루는데 어색하지 않고 블랙 코미디 같은 웃음까지 선물하면서 성지향정체성이란 무거운 주제를 선택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금방 깨질 것 같은 가벼워 보이는 인물들의 내면의 단단함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도 되짚어 볼수 있습니다.
많은 의견이 오갈 수 있고 토론거리가 될 수도 있고 가십거리로 쉽게 읽고 넘길 수도 있는 소설입니다. 지금까지 많았지만 앞으로는 더 많아지고 다양해질 화두를 다룬 이야기였습니다. 그런의미에서라도 한 번은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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