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책을 보고 해석이 다를 수 있지만 누가 봐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는 소설이 있다면 이 소설이겠구나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이성으로는 해석이나 의미 분석이 무의미하겠구나 생각됩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책일 수 있다는 기대도 해봅니다
논리적인 스토리를 짜서 시작된 이야기라기보다는 번뜩이며 든 한두 개의 소재가 아이디어가 되고 힘이 되어 글이 시작됩니다. 글이 진행되면서 복잡해지고 정리되지 않은 듯한 어지러운 연결들이 쳅터마다 주제가 되고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됩니다. 백민석 작가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보라색 곱하기 회색으로 어두운 명도지만 모든 색채는 빛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면 분명 개성 있는 색깔을 가진 작가임이 분명합니다.
이상한 주인공의 말과 행동 그리고 만화 캐릭터를 이름으로 갖고 있거나 이니셜로 호칭을 대신하는 인물들의 의미가 한참을 읽고 나서야 빠져들며 이해가 갔습니다. 책의 내용 중간중간에 계속적으로 언급되는 이 소설의 시간 배경은 80년에서 81년입니다. 우리 시대의 소설을 읽으면서 80~81년도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듣고 보고 이해했었기에 백민석 소설의 바탕에 몽환적이고 비이상적인 폭력과 강압 그리고 어두운 현실을 비꼬고 직시하고 광적으로 해석하여 설정된 환상들이 비정상적인 환상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너무도 순수했기에 가능했고 내적으로 강인했기에 80년대 난폭한 세계를 지켜보면서 성장하고 자신을 지켜낼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딱따구리, 집없는소년, 요술공주 새리, 마이티마우스, 박스 바니, 일곱 난쟁이, 뽀빠이, 손오공은 어릴 적 무허가 판자촌에서 어렵게 자란 친구들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이 소설에 인물들은 모두 그 시절 흑백에서 컬러티브이로 바뀌는 중간 세대에 인상적으로 보았던 외국 만화 주인공 이름으로 불리거나 그것, k, 희(喜)등의 대명사나 이니셜로 불립니다. 정확한 이름을 말하지 않고 만화 주인공의 이름으로 대변해서 설정한 부분은 그 시절 자신들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낼 수 없었던 억압된 환경과 그 시절 힘의 권력자들에게 시위하는 심정을 표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보호막 같은 거였겠구나 생각도 잠시 해봅니다.
이야기의 바탕에 시대적인 배경이 년도로 언급되어 참고가 됩니다. 아이들의 편은 없고 개인적이고 권위적이고 폭력적이거나 지배적인 어른들이 배경으로 연결 지어지고 특징적인 것은 글 속에 어떤 어른도 아이들을 편들거나 보호하거나 순화적이지 않습니다. 글 속에 어른들은 만화 주인공의 이름을 가진 어린 친구들이 두렵고 무섭고 저항할 수 없는 존재여서 그냥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에게 이의를 제기했던 친구, 어른들처럼 힘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친구들을 이끌던 친구들은 어떤 사건에 의해 죽거나 눈을 잃어 멀거나, 폭행당하고 성폭행당하기까지 하는 걸로 그려집니다. 요술공주 새리도 눈이 멀고 박스 바니는 죽임을 당합니다. 어른일지라도 힘 있는 어른들에게 대항하거나 순종하지 않고 자주적인 모습으로 다른 의견을 내어 자신의 삶과 아이들을 주도한다면 배척당하고 핍박받아 사회에서 소회 되거나 고립되거나 분리되어 가학적인 고통이나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충격으로 인해 과거를 상실합니다. 어딘가 끌려가거나 실종되는 어른들이 보이고 주인공과 인물들이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음악을 가르쳐주신 안 선생님은 기억을 읽습니다. 그런 어른들을 보면서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했고 영향을 받았는지는 글 속의 주인공과 하루 동안의 행적에서 다시 모이게 된 친구들의 모습에서 그려지고 기억의 파편들이 모여 반영되어 보이는 환청, 환상과 정신적 혼란 속에 비추어지는 모습들과 행동으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시대의 상황을 어떤 어른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다만 어린아이들의 눈에 비친 인상적인 기억들만 고통으로 남아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기억들이 부정하고 씁쓸했을 아이들입니다.
중간중간에 희망을 품어보는 모습도 보이지만 결국은 모두 파괴되고 무너져 버리는 충격과 고통의 시절을 기억하고 환상하며 마무리합니다. 퐁텐블로, 소풍을 이야기 하는데 이것이 작가가 최종 원하는 파라다이스 같은 안식처이고 따뜻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인가는 글의 마지막까지도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도구도 살해 무기라고 표현할 만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던 시절을 겪어내면서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 모든 기억과 상처는 재계발되는 무허가 판자촌을 찾는 모습에서 이해가 됩니다. 작가는 인물보다는 그들의 환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세계의 바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거 같습니다. 작가가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되새김질하고 싶지만 되새김질할 만큼 좋았던 시절이 우리에게는 존재치 않았다는 걸...
현실과 상상이 합쳐지는 지점인 어린 시절 살았던 판자촌에서 기억의 반복을 이야기하고 누구도 이해했다고 할 수 없는 자신의 세계를 있는 힘껏 표출하려 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모 든 것이 단정 지어질 수 없는 결말이고 누구나 제한되지 않은 생각으로 접근해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음도 이야기하며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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