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졌구나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독특한 화법과 블랙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문체에 공감하는 사회적 현상과 문제까지 무겁지만 가볍게 넘기려 애쓴 문제의식이 전체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달려라, 아비는 김애란 작가가 20대에 쓴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뒷장에 쓰인 [새로 쓴 작가의 말]에서 추정할 수 있는 나이를 손꼽아 보니 지금은 40대 초반입니다. 20대에 이렇게 창의적으로 글을 쓴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한참을 상상해 보았답니다.
꽤 쿨하고 굉장히 강한 창작자라고 생각했던거 같습니다
달려라, 아비는 엄마와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엄마손에서 성장한 외로움을 대변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꽤나 무거운 주제임이 분명합니다. 엄마와 나는 분리된 하나로 혼자 남겨졌고 혼자 미래를 준비했고 혼자 성장하고 있습니다. 보호자 아버지를 잊고 살았고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엄마와 나는 삶에 대한 미련과 아버지의 빈자리를 늘 갖고 살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달리고 있을거라는 주인공의 상상 속의 아버지, 세계를 뛰어 돌고 있다는 아버지에 대한 주인공의 기대는 지구는 둥글기에 언젠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만날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살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생각하는 아빠의 부재로 인한 삶...
'나는 내가 얼룩 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저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달려라, 아비 39 p
나를 농담으로 키웠다는 엄마는 나의 현실이고 험하고 힘든 택시 운전을 하는 엄마를 대하는 나는 외로움입니다. 어머니가 주인공에게 물려주었다는 가장 큰 유산이 연민하지 않는 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염세주의적인 외로움의 적응이 아닌 아버지의 부재는 당연할 수 있고 때가 되면 만날 수 있다고 발랄하고 유쾌한 상상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해외에서 날아든 아버지에 죽음에 관련된 편지를 보며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삶을 만들어 나가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려 애씁니다.
불안정한 10대의 주인공은 두렵고 상처 받을 수 있는 현실과 실제 외로움을 분리하여 보고 있습니다. 달리는 아빠는 주인공의 세계에서 철저하게 분리하여 자신의 노력이 없으면 상상으로도 소환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만들어 갖고 삽니다. 그래서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엄마에게 아버지의 부고에 대한 편지 내용을 거짓말로 전달합니다. 거짓말이 원동력이 되어 가슴 한켠 저릿하게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죽음을 슬프지만 우리의 마음을 무겁거나 불편하지 않게 살짝 안아 주고 있습니다.
다시 관점을 돌려 달려라, 아비 포함 전체 소설속에 부재하거나, 도망가거나, 버리거나, 떠나는 인물은 소설 속 인물 중 남자 즉 아버지임을 확인합니다. [달려라, 아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여자를 남겨두고 도망갔고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에서는 딸의 자취방에 들어와 얹혀 지내다가 홀연히 떠나는 아버지가 보이고 [사랑의 인사]에서는 주인공이 공원에서 아버지 손에 버려져 미아가 됩니다.
문화적으로 가족문화와 아비투스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도덕, 금기, 걱정, 행동규칙 등 교훈의 형태로 가족에 의해 매개되고 어려서부터 가족에서 내재화된다고 합니다. 가족은 개인의 아비투스의 형성 장소라고 합니다. 무의식적인 계획들이 교육에 의해 집단화되고 문화로 내재화됩니다. 그런데 이 소설들에서 모두가 예상하는 문화 모습이 아닙니다. 자신과 자식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둔 여자라면 슬퍼하는 비련의 여인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떠난 엄마도 딸도 떠난 아버지를 아프게 기억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간 공원에서 버려지는 주인공도 아버지에게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아버지가 길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예상하는 부모들의 극적인 만남이나 재결합은 없으나 변하지 않는 인간관계와 고정되지 않은 사랑과 애정의 감정들을 자유롭게 풀어내고 있다는 부분에서 작가의 탁월한 공감능력을 엿보게 됩니다.
읽는 내내 책이 나에게 말을 걸어 오고 있고 나는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은 우울함이나 슬픔 없이도 현실에 충실하고 삶에 대한 재해석과 고민을 할 수있는 글이었기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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