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우리시대의 소설

김연수 소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꼬마대장 2021. 8. 16. 01:44
반응형

우리시대의 소설 김연수 작품

책에 구성된 작품 중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라는 소설에 '한번 꺼낸 생각이 잘 이어지지 않고 끝이 희미하게 사그라졌다, 말줄임표를 갖다 붙여야만 온전해질 것 같은 문장들이 바람에 날리는 잔설처럼 반짝거리며 일었다가는 이내 사라졌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김연수 작가의 문체적 특징을 짐작할 수 있었고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접근 방식에 있어서 이 작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특별한 영역이 있겠구나 생각되어 다시 집중했습니다.
작가가 특정한 형식과 소재를 쓸때 왜 특정한 형식과 소재를 써야 하는지를 글로 표출해 낼 수 있는 것 자체가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연수 작가는 그가 의도하는 글이 갖는 자연 그대로의 얼굴색을 표출할 줄 알고 우리를 김연수의 작품 세계로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번 주 kbs 연중기획 우리 시대의 소설은 김연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수록된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입니다. 개인적으로 제목 자체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고 읽으면서 소설집에 구성된 작가의 단편들이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과 이부작 삼부작으로 이어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작가는 어떤 것을 제대로 보고, 구분해내고, 마지막으로 생각지 못한 사건들을 단계적으로 전개해주고 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와 수수께끼로 가득한 세계 앞에 직시하는 눈을 가진 작가는 문학과 사회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줄거리는 부조리한 1980년대의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없는 여자가 어떤 절망감에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인물로 나오며 그녀의 연인인 남자가 등장합니다. 이 남자는 그녀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왜 죽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혼란스러워하고 고통을 느낍니다. 그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마음 하나를 이해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절망을 하고 아마추어 작가이자 아마추어 산악인인 그녀의 남자는 1989년 히말라야의 낭가 파르바트산 원정에 나섰다가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입니다.
외부적으로 보면 삶에서 일어날 수 있고 시대상을 반영한 단편적인 모습이라고 넘기기 쉬운 사건들 속에서 보이는 거 외에 우리가 모르는 의미와 내면에 있었을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게 작가의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소설 속에서 시대적으로 사회에 반하는 감정에 절망해서 자살을 택하는 여인과 그 여인의 내면을 이해하고자 노력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남자, 여성은 고통을 밖으로 발산하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표출하고 남성은 안으로 삭이다 함몰되어 버립니다. 방법은 다르고 정반대의 성향이지만 둘 다 삶의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자신이 고통의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고 끔찍한 현실을 잊고 싶어 합니다. 단절하고 싶어서 독서의 세계로 도피하고 글을 쓰고 먼 히말라야를 생각합니다. 분리되고 싶어 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만 자신이 가진 진짜 고통의 정체를 모릅니다.
그때 그가 고통을 표출하는 방법은 자학적이었지만 실은 해탈과 같은 고통에 대한 공감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연인에 죽음에 대한 공감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사회 분위기와 상황을 거스르고자 했던 인간의 위엄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연인의 죽음과 시대상황 중간에 끼어있는 자신의 모습에 어쩔 줄 모르는 그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위엄 있는 모습으로 히말라야를 선택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설의 히말라야는 순수한 세계이고 어디나 있지 않는 특별한 목적지로 볼 수 있고 등반은 순수한 세계로 속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노력입니다.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햇빛을 받고 싶어 손을 뻗지만 유리창 건너편으로 손을 뻗을 수 없는 상활에서 느껴지는 한계를 벗어나려는 마음과 같은 목적지가 히말라야이고 이 소설이 길게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선택적 소재가 아니었을 까 생각해 봅니다.
죽음을 말하기 전 그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고통의 진실을 말하고 싶어했고 시선의 차이는 있지만 인생의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 했습니다.
인물에게 상황의 역전은 없으나 그가 남긴 기록으로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 이후를 추정합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빠진 글씨를 넣어 달라질 수 있는 주석을 다는 것처럼 이야기가 끝난 걸 이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소설의 결말은 김수연 작가가 궁금해하고 질문을 던졌던 처음으로 돌아와 생각하게 되는 순환의 구조로 긴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