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의 시작은 자신이 성노예 위안부였음을 끝내 밝히지 않고 숨어 사는 한 명이 티브를 통해 다른 위안부 할머니가 세상에 한 명 밖에는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하는 장면입니다. 세상에 남아있는 한 명이 유일한 사람이라는 소식에 "여기 한 명 더 살아 있다" 말하는 93살의 또 하나의 한 명이 과거와 현실을 오가며 역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소설 형식이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했고 인용한 증언들의 출처는 본문에 미주로 달아두어 더 현실적인 우리네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야기했다고 작가는 쓰고 있습니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일본 건국 이후 최대의 패배를 안겨준 전쟁으로 전쟁의 피해는 어마어마했지만 복구되었고 산업은 발달되어 부흥기를 맞은 일본에 전쟁의 상처는 보이지 않습니다. 전쟁의 복구도 있었지만 전쟁을 치르는 동안 자행된 자신들의 만행을 숨기고자 하는 계획도 함께 세웠던 거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끌려간 위안부 여성들에게 이루어진 만행의 상처가 알려진 건 1991년도 8월 14일, 정작 전쟁을 이르킨건 남성, 일본은 그걸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현재의 증언자들에게 행하지 않을 일을 거짓으로 말한다면 모욕하고 외면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강물 같아서 흘러가는 걸 막을 수 없고 남아있는 마지막 한 명이 사라져 역사에서 잊히기를 원하는 거겠지요.
하지만 전쟁은 남성이 일으키고 전쟁의 피해는 여자에게 고스란히 갔으며 전쟁터는 복구되었지만 여성이 갖게 되는 상처는 복구되지 않습니다.
위안부 여성들은 과거의 주인공 소녀처럼 시내에서 다슬기를 줍다가 일본인들에게 잡혀 끌려가 트럭에 실려 만주까지 내몰려진 사연부터 생계를 위해 일할 곳을 소개해 준다는 속임수에 끌려가 타국 땅 먼 곳에서 선택이 아닌 강요와 폭력으로 성노예로 내몰려진 삶을 살게 됩니다. 주인공은 끌려간 위안부가 20만 명이었다고 들었지만 해방 후 살아 돌아온 이들은 2만 명이었고 그 생존자 중 한 명이 자신이지만 선뜻 밝히지 못하고 93살의 나이까지 살아냅니다.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신고를 한 거야, 93년에 내 발로 도청을 찾아가 신고를 했어, 정부에서 보조금을 준다는 소리를 듣고서.........." - 본문 145p
"여태 숨기고 살았는데 죽을 때가 다 돼 뭐하러 내 입으로 이야기를 하겠어, 박복한 팔자 탓으로만 돌렸는데, 나라에 화가 나. 내가 잘못한 게 뭐 있어? 못 사는 집에서 태어나 돈 벌게 해 준다는 말만 믿고 따라간 게 죄라면 죄지"- 본문 145p
본문에 내용처럼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들은 겪었던 일을 어떻게 현실에서 다른 형태로 반영해서 이야기 할지 고민할 여유가 없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세하고 구체적인 증언들은 잔혹한 기억들이 모인 기록물이고 아픈 역사입니다. 또한 설명하지 않으면 모를 잔혹함과 비인간적인 행위들에 보호받지 못한 여성들은 파리 목숨과 같았음을 이야기합니다.
구성면에서 보면 김 숨 장편소설 [한 명]은 마치 1인극 같은 소설의 구성이지만 내재된 공포, 폭력, 처참함 그리고 비애는 다인극이 표현할 수 있는 이상으로 초현실적이고 광기 있게 표현하고 있어서 위안부 소설이 아닌 인간의 광기를 보여주는 소설이 아닐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알 수 없고 경험하지 못한걸 계속 보여주고 싶어 하는 작가의 의도도 책 전반을 통해 보이고 있습니다. 찢어지게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라도 꼭 알아야 하고 알기를 바라는 또 한 명은 위안부 할머니가 아닌 작가이겠구나 생각을 합니다.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인터뷰를 했고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보려 노력했을 테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증언들을 듣고 피폐하고 잔혹한 삶에서 한 명 한 명을 얼마나 구해 오고 싶었을지 김 숨 작가의 심정을 백번 이해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대해 생각하려 할 때마다 가장 먼저 치미는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녀에게 모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생각을 하지 않다 보니, 그리고 말을 하지 않다 보니, 그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잊어버렸다.'-본문 149~150p
"나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하루를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다."-본문 239p
본문을 읽으면서 나는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이미 모든 일이 일어났고 당신은 망쳤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아름답고 당신은 망쳐지지 않았어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해방 후 살아 돌아온 위안부 여성들에게는 세상에 가지고 싶지만 가지지 못하는 것들이 다 였음을 증언에 절절하게 드러납니다. 그분들이 겪었을 일들의 무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어두운 마력처럼 한 명 한 명 끌어당겨 자신들은 작고 초라하고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최면을 걸었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 책을 읽던 날 밤 뒤척이며 잠을 들지 못했던 내 마음에 고통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미루어 짐작됩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성노예 위안부로 살아낸 그분들의 고통만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을 작가의 뜻을 되새겨 봅니다. 사실을 알리고자 하는 그분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우리가 제대로 알 수 있었고 앞으로도 정당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역사의 흔적으로 넘기기에는 그 상처가 너무도 컸고 전쟁이 존재하는 한 누구도 예외 될 수 없는 언제든 맞닿을 수 있는 상황들입니다. 이제 14분의 위안부만이 남았다는 현실에 조급해만 해서는 안될 것이고 알게 된 순간부터 그분들을 보호하고 함께 해야 함을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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