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우리시대의 소설

깔끔하고 흥미롭고 이상한 이야기 김승옥의 무진기행

꼬마대장 2021. 7. 19.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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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은 굉장히 사적이고 감성 터지는 문체의 글로 색이 없는 세계서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이야기 입니다.
글의 시작은 주인공 윤희중이 처가에서 운영하는 작은 제약회사의 전무로 잠정적으로 확정되어 지면서 잠시 쉬고 오라는 부인의 권유로 고향 무진으로 내려가면서 부터입니다. 무진가는 버스 안에서 1인칭 시점으로 관찰되어 표현되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와 문체의 이야기 감성은 풋풋하기까지 했습니다.
'무진에 오기만 하면 내가 하는 생각이란 항상 그렇게 엉뚱한 공상들이었고 뒤죽박죽이었던 것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나는 무진에서는 아무런 부끄럼 없이 거침없이 해내곤 했었던 것이다. 아니 무진에서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쩌고 하는게 아니라 어떤 생각들이 나의 밖에서 제멋대로 이루러진 뒤 나의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듯했었다.'
주인공 윤희중은 무진을 옛물건에 대한 향수와 신비감처럼 표현했고 그 표현들은 매력적이고 몽환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글 초입부터 주인공 윤희중의 성격이 다 표현되었다고 생각되었고 내가 알던 일반적인 순수한 소설이려니 생각했던거 같습니다.
무진에서 국어선생이며 예전 자신을 따르던 후배 박선생과 자신과 동기인 세무서장 조 그리고 후배 박선생과 같은 학교 음악 선생님인 하인숙을 만나 저녁 술자리를 갖습니다. 세 인물을 통해 이들 사이의 애정관계도와 인간이 갖는 본연의 특성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대화가 빠르게 이어집니다. 특히 인물 중 하인숙은 서울로 자신을 데리고 가달라는 애원을 하는데 이해는 가지만 당황스런 설정임에도 읽는 이들이 동감하고 동정하게 했고 주인공 윤희중이 가졌던 과거의 갈등과 무진을 벗어나고자 했던 그때의 우울하고 번뇌했던 감정들을 떠오리는 계기가 됩니다. 하인숙을 통해 다시 느끼게된 내적 갈등과 우울감은 서울에서의 재혼과 성공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고향 무진에서 다시 드러납니다. 1인 2역처럼 어두운 과거의 나와 밝은 현실의 나가 같이 공존합니다. 여기서 처음 아름답게 표현했던 소재 안개가 끝까지 계속되는 소재로 연결되고 있음도 알 수 있습니다. 조용히 스미듯이 내리는 안개로 모든것이 가려지지만 안개가 걷히면 다시 처음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나는 특성이 주인공의 심경과 환경을 보여주는 소재로 적절하게 연계되어 사용되었습니다.

과거의 우울한 무진에서의 주인공의 기억입니다.

처음 무진가는 버스를 탄 자유인 같은 주인공과 마지막에 여교사 하인숙과 약속을 버리고 서울로 혼자 떠나는 냉정한 주인공의 모습도 일맥 상통합니다.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 하인숙에게 곧 데리러 오겠다는 편지까지 쓰지만 찢어버리고 뒤돌아서는 모습은 무진이라는 공간과 서울이라는 현실의 공간사이에 괴리를 보여주면서 실제 주인공이 내면에 갖고있는 씁쓸한 양면의 모습입니다. 이 두 감정은 모두 진짜이기에 인간의 양면성으로 설명하는게 더 적절한듯합니다.
또한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더 절실하게 와 닿는 나의 모습이고 현재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굴을 맞대는 현실에서는 서로 위로하고 독려하는 관계지만 서로를 알지 못하는 사이버나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는 현실과 반대되는 폭력적이고 비방하는 모습을 갖기도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둘다 나의 모습이고 내안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모습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단편이기도 했지만 무진기행을 읽으면서 느낀건 시작하는 시점과 끝나는 시점이 이상하리 만큼 같았고 무진으로 가면서 그려진 아름다움이 끝까지 가지 않고 복잡한 감정으로 이어져서 짧지만 읽는 동안 조금은 힘들었습니다. 도입부에 "무진이라는 이정비를 보았다"라고 했고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구에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팻말을 보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실은 모든것이 주인공의 현실에서 부딪히는 불편한 정신셰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고뇌는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향, 쉼, 부인의권유 등의 프레임이 씌여진 도피였지만 다시 현실과 타협을 결정하고 돌아가는 심경을 그렸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인공이 정제되는 과정과 결론은 중요하지 않았고 무진에 가고 싶고 무진으로 가면서 갖는 처음의 설레임과 아름답기까지한 감성을 끝까지 중요하게 표현하고자 헸던 작가의 의도가 꽤 멋지고 세련되었음을 인정하면서 글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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