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초원 설정은 우리가 겪어 보지 못한 독특한 경험이고 신비하기까지 한 설정이지만 이 설정마저도 현실이 내포된 실존적인 글이었습니다.
전성태의 단편 모음집 < 늑대 >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욕망, 배짱, 금기, 유산, 자유, 사랑, 열망, 파멸, 동성, 간절함, 이데올로기 등등... 설정은 심플하지만 내포하는 주제가 많다 보니 글이 끝나도 상상에서 이야기를 이어 만들게 되는 폭이 넓은 작품세계를 맛보게 됩니다. 전성태 작가의 절제된 문체에 열려있는 시선이 매혹적입니다.
특히 단편소설 중 `늑대`는 격동기 몽골이 배경인 작품입니다. 초반에 화자가 자신의 삶의 변화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변화하는 현실을 다루면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우리의 삶이 어디까지 돌아가는 것일까 상상해 보게 합니다. 몽골의 급격한 사회주의 체제의 포기와 시장경제의 도입으로 인한 변화는 극심한 갈등 상황들을 만들어낼 거라는 복선이지만 글은 무미건조하면서 약간 날이 선듯하고 전체적으로 눌려있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인지 내용 중 화자들이 욕망과 욕정의 끝을 죽음이라는 극한의 결말로 닿을 때까지 전혀 격양적이 거나 복잡함 없이 차갑기까지 합니다.
단편 `늑대`에서 공간과 시각적으로 대비되는 지점들이 보입니다. 푸른 초원과 검은 아스팔트길, 검은 수컷 늑대와 흰 암컷 늑대, 흰 그늘을 드리운 자작나무 숲과 그믐날의 어두움입니다. 대비되는 지점들 어느 쪽에서나 인간들이 지켜줘야 하는 규칙이 있는데 왜 그런 규칙들이 만들어졌는지는 자연스러운 것들이라 모르지만 적용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실존적인 비극과 딜레마에 기준점이 되는 설정들도 계속 보입니다. 늙은 사냥꾼의 돈과 노구의 열정, 자본의 매혹, 검은 정염, 개의 영혼, 인간들은 자유롭고 각자 크기가 다른 세계관을 갖고 움직이고 있고 극복해 나가고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지점에서든 하나의 속성이고 인간은 루저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몽골이라는 조용한 환경에서 변화하는 시대속에 인물과 외부인의 방문과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전개지만 인물 하나하나의 묘사와 행동들은 전개되는 내용 안에서 인간의 불안한 기운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수많은 규율과 변화를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드 넓은 초원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상징 인물인 솔롱고스 사냥꾼(=나)은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인물이지만 사회주의 체계 이면에 이미 내포되어있는 욕심을 보여주는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고 죽음을 맞이하는 허와는 자본주의, 돈, 인간의 욕망을 대신하여 마치 금지된 사랑으로 인해 죽은 것처럼 포장된 인간 내면의 검은 결과물의 단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응해야 하는 자연적인 것들에서 벗어나려는 속성은 언제나 충돌하고 있음을 알고 세상을 지배하는 이해 할 수 없는 원리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몽골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화의 격동기 속 혼란스러운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균형을 찾아야 하지만 욕심과 섣부른 욕망으로 균형을 깨뜨리고 사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합니다.
몽골이 품은 자연과 그 안에 꾸려지는 이야기가 아름답지만 슬프기까지 합니다. 또한 글 전체를 다 읽고서는 재앙 같은 격동기를 바라보는 자로써 느끼는 안도감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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