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수다 책장

황정은 연작소설 연년세세 年年歲歲

꼬마대장 2022. 9. 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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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만으로는 소설을 짐작할 수 없음을 알기에 또 한 번 황정은의 소설을 집어 들게 된다.

각각의 소설을 쓸 때마다 소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한 삶을 살다 나왔고 나는 그게 경이로우면서도 두려웠다.
- p185 작가의 말 中

글에서 처음 만났던 황정은 작가는 여전히 우리와 같은 시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집중해서 글을 쓰고 있었다. 세심히 들여다보고 읽다 보면 페이지는 쉽게 넘어가지만 사회, 역사, 생존, 여성... 이란 주제들을 심오하게 관찰하여 덤덤하게 글로 표현해내고 있어 날카롭지만 순화된 표현은 지금 계절 아침에 올라오는 물안개처럼 인상적이다. 작가의 말처럼 그 시절을 다녀온 기억처럼 흐릿하지만 정확하고 모 난구석 없이 순화된 글은 가슴 한편을 자꾸 건드리게 된다.

추석이라고 일찍 친정을 다녀왔다. 아빠의 검던 머리카락은 완전한 백발인데 아쉽게 숫이 적어져 속이 살짝 살짝 보이는 게 철없이 나이만 먹은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지고 엄마의 이마에 깊은 골이 지난 세월의 아쉬움처럼 느껴졌다. 억척스럽고 생활력 강하기로 따지자면 2등 가라면 아쉬운 우리 부모님이었다. 작품 속에 한중언과 같이 책임감 없고 무능하게 표현되는 아빠도 아니었고 딸들에게 마냥 미안해하고 기대며 늦은 시각까지 기다려 새 밥을 지어주는 엄마도 아니다. 다만 책의 표지에 [잘살기] 글귀처럼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라고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부모님이시다. 공통점은 작지만 굵직하고 크게 느껴진 탓인지 내 나이 탓인지 어느새 몰입하여 내가 한영진이 되어 엄마의 모습을 자꾸 들쳐보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에서는 조금 멀고, 책임감 없고 철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나의 모습에서도 벗어난 이야기 같은데 자꾸 내 엄마와 감추고 사는 내 속마음을 들쳐보고 있었다.
수퍼우먼도 울고 갈 능력으로 집안일, 자녀교육, 직장일까지 열심을 내셨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는 한 번도 나에게 집안일을 시키신 일이 없다는 걸 결혼하고 알았다. 늘 열심을 다해 정직하고 근면하게 공부하라고 가르치셨고 나는 분명한 게 없어 분명한 무언가가 되려고 늘 열심히 했고 애쓰며 우수한 성적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마음 놓고 지켜볼 수 있는 직업과 위치를 가졌다. 글을 읽는 내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공존하면서 순일이 마음 쓰고 있는 자녀들과 엄마 순일을 바라보며 형편을 다독이며 속 마음을 누르고 살고 있는 딸의 모습 특히 한영진에게 마음이 쓰였다.
자신의 꿈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을테고 학업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을 테고 하고 싶은 말을 꾹꾹 가슴속에 눌러두어야 했을 장녀라는 위치가 안쓰러웠다. 평생 열심히 일을 해서 외국으로 나가는 동생의 학비까지 대신 준비해주어야 했고 때마다 용돈을 보내주었고 결혼 후에도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중심에 서야 하는 모습에 한영진이 하는 혼잣말은 가슴이 아프고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나를 비교하며 감사했다.

그런데 엄마, 한만수에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돌아오지 말라고.
너 살기 좋은 데 있으라고.
나는 늘 그럿을 묻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p81


소설은 이순일 가족의 인물관계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감정들을 그리고 있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부모님 세대에서 2세 3세까지 이어지는 세대를 모두 연결 짓는 이야기가 연작으로 연결되고 있다. 6.25 전쟁의 역사적 사건이 가져다준 여성이 겪은 차별과 폭력이 그려져 있고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는 고통과 삶의 버거움이 그려져 있다. 더 나아가 한국 전쟁 이후 이민자로 해외에서 살게 되며 겪는 부모님의 삶에서 세대를 대표해서 윤부경의 이야기도 이순일과 연관하여 그려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했던 과거의 행적과 관련된 이야기로 타지에서도 손가락질받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란 이민자의 2세들은 그런 부모님을 사랑하기에 더 밉고 원망했음을 노먼과 제이미를 통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도 똑 떨어지는 답변을 해주고 있지 않지만 분명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짐작으로 알고 있고 여러 각도로 생각해볼 문제임도 알게 된다.

어느 한 가족도 사는 모습이 같지 않다. 분명한건 가족의 이야기는 알수록 답하지 못할 숙제 같은 것들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이순일이 생각한 잘살기가 글만 봐서는 다 이루어진 건지 진행 중인지 나는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꽤 진중하게 자신의 가슴 한구석에 담아두었던 응어리 같던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어 주어 우리가 그 기억들을 만져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제목처럼 여러 해를 거듭하여 계속 이어지는 우리내 이야기를 사회적 이야기로 크게 키워보일 수 있었지만 황정은은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직접적인 언급 없이 늘 생각거리를 남기는 여운 있는 글을 써 주었다. 슬프고 숙명적이지만 우리가 그냥 손 놓고만 있을 수 없도록 자극해준 듯해서 반가웠음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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