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수다 책장

김애란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인생

꼬마대장 2022. 8. 1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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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눈에 띄는 프로그램 중에 MBN '고딩엄빠2'가 있습니다. 10대에 부모가 된 고등학생 엄빠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좌중우돌, 세상과 부딪히며 성장하는 리얼 가족 프로그램인데요 [두근두근 내인생]에서도 아름이와 엄마 아빠가 17년 전 고등학생 엄빠가 되어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어린나이에 엄마 아빠가 된 10대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며 어른들이 몰랐던 10대들의 성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의 성격보다는 더 깊은 이야기가 있는 [두근두근 내인생]입니다.

김애란 첫 장편소설 [ 두근두근 내인생 ]

지난해 [달려라 아비]를 읽으며 김애란 작가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을 살아내는 과정이 슬프다고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보이지 않고 환경이 부족해 삶을 비관하지 않고 어떻게 하냐며 푸념 떨며 좌절하지 않고 힘 빠지고 우울할 수 있는 이야기를 유머와 위트로 현실을 받아들이며 견뎌내는 김애란 작가만의 화법과 문체가 좋아서 시간이 나면 그녀의 작품을 찾아보게 됩니다.
글 전체에 사건의 큰 골은 만들지 않으면서 현실적인 상황에서 교차되는 인물 상호 간의 감정선이 자연스럽고 따뜻합니다. [두근두근 내인생]에서 사건의 중심은 '나' 17살 그러나 신체나이 80세를 바라보는 조로증 환자 아름이입니다. 조로증은 어린아이들에게 조기 노화현상이 나타나는 치명적이고 희귀한 유전질환이라고 합니다. 아름이의 엄마. 아빠인 미라와 대수가 17살에 만나 아이를 낳고 34살이 된 현재, 아름이는 17살의 나이로 80살의 육체를 가졌습니다. 우리가 쉽게 흘려보내는 한 시간이 하루 같고 한 달 같고 일 년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보통의 다른 사람과 다른 시간을 갖고 살아가는 아름이입니다.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뭘 잘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말이야,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그래, 그거면 되겠다. - p37

아이를 갖고 키워본 부모라면 모두가 같은 생각입니다.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아빠 대수의 이 바람이 아름이를 바라보면서 그리 짠하고 가슴 아픈 소원이 될 거란 생각을 못했던걸 짐작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내가 먹은 나이 속엔 겹겹의 풍부한 주름과 부피가 없었다. 나의 늙음은 텅 빈 노화였다. 그래서 나는 나보다 오래 산 사람들의 인생이 궁금했다. 혹은 나만큼 늙지 않은 이들의 감각이랄까 고민 같은 것도 알고 싶었다. -p53

한창 꿈 많고 누구보다 하고 싶은 것이 많고 부모님을 잘 이해하고 자신을 사랑하지만 내면에 아픈 아름이가 너무 많아서 아이 답지 않은 아름이입니다. 가족에게 의지하고 투정을 부릴 법도 한데 오히려 엄마 아빠가 아름이에게 기대어 위로받고 사랑을 받는 모습이 때론 유머스럽게 때론 담담하게 보입니다. 이런 부분은 가장 김애란 작가 다운 벗어날 수 없는 매력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주인공 마음속에 보이는 어쩔 수 없는 슬픔과 어둠을 서정적이고 고뇌하는 모습으로 표현할 수도 있음에도 절제되고 담백하게 표현하여 독자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말하고 있는 모습이 요란하지 않게 깊은 곳까지 느껴집니다.
주어진 환경들은 아름이가 절대 행복할 수 없어 보입니다. 병과 가난... 두 가지의 조건만으로도 현실에선 충분히 불행할 수 있는 조건들입니다. 하지만 치료비를 위해 tv 기부 프로그램에 나가기 위해 작가가 아름이에게 또래 아이들이 가장 부러울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실패한 아이들이 부럽다'라고 합니다. 아름이는 실패하고 소리 내어 울어볼 기회조차 없기에 좌절하고 다시 시도해보는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제한된 시간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진짜 불행한 건 건강이 나빠지고 돈이 없고 늙고 병들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이유들을 달고 시도하지 않고 피하며 우물쭈물 시간에 떠밀려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지나가는 부분이었습니다.
또 한참 성장하는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반복되는 질문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아름이의 대답은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입니다. 개인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주 갖는 질문이지만 아이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보면서 웃고 눈물지으며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질문이었습니다. 아름이의 말처럼 어른들은 자식을 통해서 자신의 경험을 희미하게 복원하고 잊힌 기억을 떠올리며 스스로 보지 못한 나를 다시 보고 성장하고 더 커버린 부모가 되고 더 사랑하는 자식이 되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아름이도 아픈 자신을 부모가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할 수 있다는 아픈 질문들을 갖고 살아갑니다. 기적처럼 병이 호전되고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생활이 나아지는 해피한 결말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름이의 길고 힘든 투병생활이 끝나면서 마무리되지만 아름이가 남긴 엄마 아빠에게 사랑을 담아 쓴 글과 엄마에게 태어날 새로운 생명이 있습니다. 아름이가 가졌던 질문들과 하고 싶었던 것들이 다시 반복되어 가족에게 행복으로 찾아올 '두근두근 새로운 인생'을 남기고 가는 아름이입니다.
작가는 짧지만 벅찬 감정을 느끼는 삶을 살다 간 아름이를 보여줍니다. 많이 가슴 아프지만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는 작가의 말들이 조개가 품은 진주처럼 오랜 시간 품었다 나오는 말들이라 한참을 되내곤 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제목 [두근두근 내 인생]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슬펐지만 질척하지 않고 명료한데 독자의 손에 이거다라며 쥐어주는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단순히 가족애만을 그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픈 아이의 짧은 인생기를 담아 슬픈 감정에 호소하지 않습니다. 한 줄 한줄 메모하고 깊이 새기고 싶은 글은 독자들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환경과 기간만큼 다양한 해석을 가져갈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단순히 작가의 글이 좋아서 펼쳐보았던 책입니다. 오랜만에 소설에서 철학을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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