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보이]는 성장하는 제스의 어린 시절과 사춘기까지 함께 하며 보이지 않는 내면에 혼돈과 공허를 채워주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이야기다. 죽음, 영혼, 환상 등의 단어들이 툭툭 떠오르는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은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주는 이야기의 전개가 마냥 신나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수년 전 친정 아버지가 첫 손주를 보던 날 20년 넘게 피어오시던 담배를 끊으셨을 때 우린 아버지가 큰 결심을 하셨는가 보다라며 놀랍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던걸 기억한다. 그런데 [리버보이]에서 손녀에게만큼은 괴팍하지만 한없이 친절하고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오래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우리 아버지도 제스의 할아버지와 같은 진실함과 사랑을 전달하시고자 노력하셨던 분임을 책을 읽으며 다시 깨달았다.
초반부 [리버보이]에 할아버지는 제스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격려하며 매일 동행하여 손녀가 수영 연습을 하러 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할아버지가 수영을 잘하는 손녀에게 연습시키는 기회로 보면 충분히 그럴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결말을 보면서 할아버지는 제스에게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훈련시키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아기 독수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이 옳은지 모르는 혼돈에 있다가 독수리의 날갯짓이 반복되면서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그날 자연의 진리 앞에 나가는 것이다. 성장하는 제스의 인생의 빈 공간에 할아버지는 손녀가 인생을 채울 수 있는 의미와 가치를 경험토록 도움을 주는 어미 독수리와 같은 사람이었겠구나 생각한다.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할아버지는 '리버보이'라는 그림을 그린다. 제목과 같은 의미라면 그림에는 분명 소년이 보여야 하는데 그림에 소년은 보이지 않고 할아버지는 점점 쇠약해진다. 자신의 그림을 완성하기를 바라지만 점점 악화되는 건강으로 붓조차 드는것이 힘들어진 할아버지를 보면서 손녀 제스와 가족들은 불안과 상실감을 갖게 되고 제스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할아버지와의 죽음, 이별에 대하여 생각하며 두려움을 갖게 된다.
가까워지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손녀 제스의 혼란스러움이 커져갈때 '리버보이'라는 신비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의 생명의 불이 다해갈 때 나타난 신비한 소년 '리버보이'는 죽음을 이야기해야 하는 불안한 상황을 고통스럽거나 어둡거나 자극적이지 않게 이야기하면서 제스가 맞닿뜨린 상황을 신비함과 미스터리함을 이용하여 잔잔하지만 깊은 추억으로 남게 하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혼돈과 갈등과 걱정으로 가득찬 제스를 할아버지처럼 이끌어준 건 '리버보이'였다. 할아버지와 함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제스에게 조언하고 위독해지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승화시킬 수 있도록 강의 발원지에서 바다까지 함께 수영하기를 권했다. 미스터리해서 판타지 장르 같기도 한 전개는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청소년 시기의 제스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현상과 믿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족으로 함께 해왔던 할아버지는 정신적 육체적 유산을 이미 삶으로 제스에게 넘겨주셨고 그 유산을 내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가상의 조력자인 '리버보이'를 스스로 만들어 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할아버지를 사랑했기에 할아버지의 그림에서 진정한 할아버지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리버보이'를 만들고 만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할아버지를 닮은 소년 '리버보이'와의 만남을 통해 할아버지에게 도울 용기를 받고 삶과 죽음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별은 언제나 슬프지만 슬픔속에서 또 한 번 성장하고 죽은 이가 남긴 추억을 연료로 남은 삶을 살아가는데 유연하게 사용하게 된다. 손녀 제스의 어린 마음도 점점 단단해지고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게 전해준 정신적 유산으로 또 한 번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와 동일시시킨 가상의 조력자 '리버보이'와의 만남은 제스에게 할아버지의 존재가 그랬듯 무한한 위로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수영과 강이라는 공간에서 '리버보이'와 함께 하고 할아버지의 긴장된 죽음을 예감했을 때 할아버지와 제스가 함께 공유하고 좋아하던 강으로 돌아가 모든 생각을 쏟아 부우며 수영하는 모습은 글에서도 감정이 절정에 도달했음을 느끼게 했고 읽은 나도 격한 감정이 밀려오는 듯했다.
주제가 무거울 수 있는데 큰 사건 없이도 흐름이 매끄럽고 지루하지 않을만큼 세밀하고 구체적인 서술이었다. 복잡한 감정을 늘어놓거나 유난스럽지 않게 잔잔하게 전달해 주었다. 번역서이기에 감정 전달에 있어서 이질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동양적인 정서가 묻어있는 글의 전개가 자연스러웠고 공감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서정적인 부분이 또 다른 그림같은 글이었다.
절제된 감정을 짚어보며 '리버보이'와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책이라 정의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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