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소설이지만 가정폭력과 어긋난 가족 구성원들의 모습을 날것 그대도 이야기하고 있어 조금은 센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낯설지 않게 주변 이야기로 간간히 들어볼 수 있는 내용들이었기에 문제점을 인식하고 보게 되는 의미 있는 도서였다.
불편한 비극들이 상처가 되고 가족간에도 이야기하기 힘든 일이 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외면하게 되거나 내 안에 하나하나 쌓아 숨겨오다 너무 아파지게 된다. 주인공 소년도 외면하고 아무렇지 않게 숨겨오다 자신의 모습을 잃어 버린 모습이다. 열여섯 살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냉담하고 가혹한 가족사이다. 아빠라는 이름의 남보다 못한 사람은 엄마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존감을 상실시켜 자살을 하게 하고 어린 소년은 외면당하고 버려지기까지 한다. 새엄마는 아빠와의 갈등으로 소년을 정성적, 물리적으로 학대하고 냉대하며 소년이 새엄마의 딸 무희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누명을 씌워 소년을 도망치듯 집을 나가게 만든다. 사실 힘없고 무기력한 새엄마의 딸 무희도 새아빠의 성추행과 정서적 폭력으로 잊지 못하는 상처를 갖고 살게 된다.
밀려오는 슬픔....소년의 말처럼 '나는 단지 이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과 남겨져 계속 상처를 겪어내야 하는 소년이 하는 혼잣말이 이처럼 구슬프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책에서 갖게된 두 가지 생각을 더듬어 본다.
하나는 이 책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건과 상처를 겪게 되면서 남겨지고 다시 엮이게 되는 사람들의 풍경과 그 풍경 안에 시간을 다루고 있는 점이다. 소년에게 순간순간 들이닥치듯 기억 속에 일어나는 엄마의 죽음과 아빠의 무관심과 냉대속에서 혼자 남겨졌던 시간을 이야기한다. 남겨진 사람만이 가지는 두려움과 불안감에 소년은 말더듬이로 진행된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글이 있으면 문제가 없지만 글 없이 말을 해야 하는 시간은 소년이 기댈 곳도 중심도 없이 혼자서 견뎌야 했던 시간에 몸이 보이는 반사적인 긴장상태였을 것이다. 너무 큰 일이라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계속 떠오르는 기억은 상처처럼 흔적이 남았을 테고 그 흔적은 어떻게든 사람의 행동에 나오게 된다. 학교에 진학을 하고 사람을 만날 때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무시해보지만 소년의 시간 속에는 분노하고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다른 또 하나는 도망치고 싶은 현실에서 나를 품어주고 안아줄곳이 있는가이다. 무너져 버릴 것 같은 현실이 소년 외에 다른 이 에게는 아무렇지 않고 간단하게 보일 수 있다. 이렇게 망연자실하고 모든 게 포기되어 무너지는 순간에 필요한 위저드 베이커리 같은 곳이 우리에게는 있는가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에 점장과 파랑새는 인간세상에 모든것은 순리에 맞게 시간 속에서 기억되어 흐르는 거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현실을 역행하지는 않지만 인위적으로 순리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포함되어 질수있는그들의 빵과 쿠키에는 모두 주의사항이 설명되고 표기되어 있으며 선택에 대한 책임 있는 결정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 소년도 내면의 붕괴로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적인 결정이나 행동은 하지 못하고 어떤 말도 잘 표현하지 못한다. 너무 큰 일에 대한 기억은 짧게 길게 계속 주인공 소년의 마음속 깊은 곳을 자꾸 건드리는가 보다. 가정폭력은 아주 길고 아프게 몸에 박히는 십자가의 못과 같다는 생각이다.
'나는 단지 그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살아있는 존재만으로도 상처를 받고 함부로 대우받아야 하는 사람은 없다. 부모도 가르쳐 주지 않고 주지 않았던 사랑과 관심을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깨닫게 된다. 마법사 점장은 소년에게 마지막으로 누구에게도 판매하지 않은 귀한 '타임 리와인더 머랭 쿠키'를 준다. 시간 속에 기억은 흘러가고 현실적으로 선별 해서 가질 수 없지만
가장 익숙하고 행복했던 시간을 복원하는 쿠키는 시간을 물질적으로 표현하고 소유할 수 있게 함으로 소년의 상실감을 어떻게든 달래주려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야 소년이 살 수 있고 그걸 도와주기 위해 위저드 베이커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소년이 쿠키를 먹어주기를 바라지 않았고 소년은 먹어야 할 시간을 놓치고 자력으로 이겨내는 모습이다. 살아내기 위해서는 쿠키는 보조식품일 뿐 진짜 필요한 건 용기와 격려 그리고 사랑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소재가 무겁지만 구병모 작가의 영리함과 섬세함으로 소설은 2가지의 결말을 가진 선택적 성장소설로 마무리 된다,
Y의 결말은 자극적이지만 답답함은 조금 덜했다. 속이 후련한 느낌까지 받게 되지만 보여주고 싶지 않은 현실적인 사회문제를 그대로 보여준 것 같아서 소년에게 미안했다. N의 결말도 소년은 따뜻한 가족의 행복이나 사랑을 느껴보는 결말은 아니다. 다만 희망이란 걸 주운 사람처럼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마음이 자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결말이다.
힘든 일이 사람을 더욱 단단하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해 본다. 하지만 소년 소녀들의 어린 시절은 빵을 만들기 위해 준비된 반죽과 같다. 어떤 효모와 어떤 향기가 첨가되는가로도 맛과 풍미가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가 위저드 베이커리의 같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의 기억이 다음 세대를 만들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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