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우리시대의 소설

김원일 작가 장편소설 마당 깊은 집 입니다.

꼬마대장 2021. 10. 16. 12:27
반응형

김원일 마당 깊은 집

김원일 작가가 기억 속에 시간과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소설이었습니다. 기억에 관한 모든 것은 시간에 대해 함께 다룰 수밖에 없고 시간이 지난 후 내 몸에 저장된 기억 속 남겨진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처럼 그려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6.25 이후 혼란한 시대에 남겨진 사람들이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 어쨌거나 살아야 한다는 같은 생각을 갖고 세월을 견뎌야 했습니다. 고향 진영에서 혼자 남아 남의 집 살이를 하던 주인공 길남이 누나를 따라 가족들이 살고 있는 대구 중심부 장관동으로 올라오면서 이야기의 배경이 시작됩니다. 마당 깊은 집으로 불리는 안채에는 부유한 주인 가족이 살고 아래채에는 가난한 네 가족이 함께 살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집안 대대로 부유하게 살아온 안채 주인 부부는 방직공장과 금은방을 운영하여 넉넉하지만 세 들어 사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은 모르는 인물들로 그려집니다. 아래채는 경기도 연백에서 피난 온 경기댁 세 가족과 퇴역한 상이군경 가족 준호네 네 식구, 평양에서 피난 온 평양댁 네 식구, 길남이를 포함한 다섯 식구가 아래체에 살고 있습니다. 바깥채에 대구 근처 김천에서 피난 온 김천댁 두 식구도 삽니다. 아래체 식구들은 모두 가난하고 혼란한 시간 속에서 얼마나 허둥대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들을 버티고 이겨내려 노력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길남)의 어머니도 바느질로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가장의 모습니다. 전쟁 중에 실종된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한 여성 가장이 억척같이 일을 해내고 장손인 길남에게 엄격한 교육과 훈육을 합니다. 길남이도 중학교 입학 시기를 놓치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신문팔이로 가족의 생활비를 보태고 집안의 대소사에 어머니의 지시로 함께 해 나가게 됩니다. 글의 배경이 6.25 직후이고 분단 관련된 이데올로기를 글에 직접적인 주제로 드러낼 수 있지만 작가는 시대상에 비춰 살아내는 사람들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구체적인 설명 없이 그려지는 길남의 아버지도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인물로 월북이 추정되고 아래체에 네 가구 중 평양댁의 아들 정태의 월북 관련 사건과 재판, 수감과 관련된 내용도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슬픈 시대상으로만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한 없이 좋으면서도 진저리나게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는 게 가족입니다.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내가 저런 집에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이고 소설 속 인물 하나하나 모두 힘든 현실이지만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는 가족사를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입니다. 제목의 마당 깊은 집의 마당은 여러 가족이 앉아 식사를 나누는 테이블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테이블 위 가족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내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한 구성원도 있고 가족끼리 화해하고 위로받는 구성원도 있습니다. 길남이가 어머지의 호된 훈육과 매정하리만큼 절제된 사랑에 서운해 가출하고 어머니가 역에서 웅크려 잠든 아들을 찾으러와 데려가는 모습에서는 작가가 이 소설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임을 보여주고 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김원일 작가의 글이 오랜시간 꾸준하게 읽히고 있는 매력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가족은 경험이고 시간의 소산이고 역사 자체입니다. 소설 속에 가족들의 모습은 사는 것도 비슷하고 구성원도 비슷하고 시간도 같이 했지만 컴퓨터의 로직처럼 일률적이지 않아 미묘하게 다각도로 다름을 알 수 있고 인정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때 그 시간이 영원할 것 같지만 인상적인 기억 하나로 때로는 반창고의 모습으로 때론 마음에 드는 옷의 모습으로 남는 게 가족입니다. 그런 의미서 김원일 작가는 긴 시간을 펼쳐내어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여운을 잔잔하게 잘 전달해 주었습니다. 때론 흐릿할 수 있는 소중한 기억들이 특별한 기교도 없고 미학적이지 않지만 진정성 있게 시간을 다루는 탁월한 필력으로 한 편의 풍경화처럼 보여주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