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우리시대의 소설

임철우 장편소설 봄날

꼬마대장 2021. 6. 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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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의 두께감이 부담으로 다가왔던 봄날의 첫 페이지를 넘기고 숨 가쁘게 읽어 5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부모님 없이 동년배 친구들과 처음으로 놀이동산에서 탓던 롤러코스트를 연상하며 큰 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습니다.
책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타박상으로 온몸이 얼얼한데 울음도 나오지 않고 슬픔인지 화가 남인지도 모르는 복잡한 감정이 엄습해왔습니다.

1권의 나른한 일상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봄날은 이유있는 제목으로 시작된 리얼리즘 장편소설로
이야기는 악당의 소굴속에서 따뜻한 봄날을 기대하며 괴물들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같았습니다.
텍스트 밖으로 뛰쳐 나오는 시작부와 후반부에 계속되는 복선을 연결고리로 독재 군정부의 짜인 각본에 의한 긴장감이 광기로 폭발하고 폭력으로 얼룩져 롤러코스트처럼 빠르게 지나갔고 장면 장면이 사진처럼 남아서 롤러코스트가 멈춰 섰을 때 기억이 편집되어 알 수 없는 감정과 그림처럼 남는 것과 같은 것을 느낍니다.

책을 다 읽고서야 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녹색창에서 찾아보았습니다.
픽션이지만 논픽션인 책이기에 자세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도 들었으니까요
작가인 임철우님이 '내내 5월이면 그 열흘의 시간을 수없이 다시 체험해야만 했다'는 인터뷰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독재 군정부의 명분을 위해 자국민을 학살한 군정부의 인물들과 그에 대항하던 광주 학생, 노동자, 부녀자, 사제, 군인 , 경찰... 그 공간에 함께 살아낸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철저하게 고증을 통해 모습을 담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큰 맥락은 주인공 한원구 씨 가족의 세 아들을 가지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세 아들 모두 의도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은 시대에 같은 공간에 얽혀 각각 다른 형태로 5.18의 광주를 겪어내야만 했습니다. 큰아들 무석은 음울한 가족사를 안고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소심한 인물로 5.18 민주화운동에 타의에 휩쓸려 참가하게 되는데 힘없는 계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 명치는 지원하여 들어간 공수부대 군인으로 귀속되어 자신의 고향 광주 진압 현장에 투입되고 계급과 소속에 묶여 인간병기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군인들이 갖는 짐승의 시간 속에서 번뇌하는 모습을 거칠게 갈등하는 인물로 표현되었습니다. 셋째 아들 명기는 전남대 영문과 학생으로 도피하는 자와 맞서는 두 부류의 지식층의 모습 중 맞서는 지식층을 대변하는 인물이었고 함께했던 학우와 주변인들의 참혹사를 보며 광주의 아픔을 맛보아야 했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했고 저항해야 했습니다. 무석, 명치, 명기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읽는 내내 두려움과 연민으로 계속 질문이 던져집니다.

이야기는 책 4권에 시민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탈취하여 나눈 장전된 총을 만지작 거리는것 같은 긴장감이 계속됩니다. 모순과 거짓이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미 같은 독재 군정부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모든 광주시민을 죄목도 모르는데 공범으로 몰아갑니다. 차분하고 순박하던 광주 사람들이 점차 폭력적인 인물들로 변할 수밖에 없고 괴물을 죽이기 위해 또 다른 괴물이 되어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우리가 가진 편견이 얼마나 위험한가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지역색, 사상, 이념은 보이지 않는 편견입니다. 실제 이 책에서 계속되는 빨갱이, 전라도, 경상도, 간첩, 색출과 같은 단어들은 편견의 다른 이름으로 군정부는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총칼로 사용하고 광주시민들은 위협에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방패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군인과 시민들 양쪽 모두 편견 속에서 선과 악의 경계를 고민하고 있었고 후반부에 가서는 이 경계가 무너지면서 현장에 있던 양쪽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암울한 시간을 드러내는 설정은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파집니다.

고립된 섬과 같은 광주의 이야기 [봄날]은 조금도 과장되지 않고 슬프지만 울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진실을 알려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비극의 연속선상에서 끝을 맺고 인물 명기의 시선을 돌리면서 희망을 갖으려 노력합니다.
한국 근대사를 이야기하는 역사책 같은 [봄날], 제목으로 다시 돌아와 이유있는 제목을 이해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임철우 장편소설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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