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에 대한 선입견도 있고 편식하듯 읽은 책들의 영향도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했는데 부드럽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따뜻한 물같이 목 넘김이 좋은 수프 같은 부드러운 화법과 어색하지 않은 문장들은 편안하지만 선 긋기를 잘해서 접근하는 방향이나 시선에 따라 읽는 사람에 맞게 가치가 태어나게 하는 힘이 있는 책이었습니다. 제 안에서 태어난 가치의 주제는 사람, 사회, 공간, 현재와 미래 안에서 거듭난 관계, 즉 소재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현재와 미래 사이의 어두움에서 건져져 빛으로 인도되는 과정에 경험하고 부딪칠 수 있는 관계를 과학적 소재를 이용해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관심을 갖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는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은 관심을 표출 하는 방법을 찾게 되고 찾는 과정에서 인적 물적 자원들의 관계를 따져보고 이로움 해로움을 계산해보기도 하고 적극적인 해결 방법이나 앎을 목적으로 상상을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시작하죠. 김 초엽님은 감각과 센스를 이용해 관계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기도 하고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지만 공격적이지 않게 우회시켜 미래 상상을 통해 주제를 관철시키고 있습니다. 질문하며 끌어내는 과정을 통해 사람을 품고, 철저하게 고독하기도 하고 철학적이지만 우울하지 않게 표현하는 따뜻함이 묻어 나는 글이었습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완벽함을 이루는 노력이 은밀하게 어둠의 일에 동조하는 일이었고 빨리 끊고 나오려고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장애를 보이는 관계에 대해서 슬프지 않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최근 사회 문화에 대한 접근도 보이는데 깊게 들어가면 아픈 구석들을 많이 건드려야 할 듯해서 이해의 노력을 억지로 하지 않으려 했던 게 기억납니다.
[스펙트럼]은 처음엔 난해함에 잠시 당황했는데 너무도 간단한 원리를 발견하는 글이었습니다. 어두운 공간에 불을 켜면 어둠이 순식간에 물러가듯이 내가 조난 당해 외계 생명과 조우한 여성 과학자로 글 가운데 서니 자연스럽게 주인공 희진의 생각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지구인과 외계 생명체 사이에 호기심 관계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공생 관계에 대한 이해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였고 소통의 자유로움을 느끼는 희열이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관내 분실]은 소재와 구성에 놀라고 만족스러웠는데요 미움이 큰 가족과 인연을 끊고 등 돌리며 내 삶을 살아내는 건 삐뚤어진 청소년이 금지된 술 담배를 했을 때 당장의 즐거움을 즐기지만 영혼이 피폐해가는 과정에 비유해 볼 수 있을 만큼 되돌리기 어려운 쓰라린 사건과 같습니다. 관내 분실은 제게도 ‘네가 꿈속에서는 주인공 지민이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니”라는 질문을 해주어서 잠시 눈시울을 적시며 가족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답니다. 작가는 실타래처럼 얽힌 긴 갈등의 시간을 정보 수집된 ’ 마인드‘란 미래 소재로 끈적이지 않고 산뜻하지만 가볍지 않게 풀어내 주어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창의적인 글이었습니다. 뻔 할 수 있는 늙은 여자 과학자 안나의 아쉽고 동정 가는 이야기지만 애처롭지 않고 세련되게 표현했는데요 어려울 수 있는 사회와 개인의 갈등 관계를 단조롭고 심도 있게 다룬 내용이어서 다시 되돌려 읽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주제를 무겁지 않게 표현하려면 상황이 자극적으로 빠르게 전개하거나 인물들을 많이 등장시켜 시간별로 여러 사건을 만들어 글의 무게감을 덜어야 하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했는데 김 초엽님은 적정선을 그을 줄 아는 작가였습니다.
김 초엽님의 다른 단편들 역시 매력적입니다.
작가 김초엽님을 과일로 표현하자면 처음에는 아보카도였는데 읽고 보니 오렌지였습니다.
아무쪼록 다음작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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