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우리시대의 소설

한강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꼬마대장 2021. 11. 9.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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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6월 초 우리 시대의 소설로 선정된 임철우 작가의 봄날을 몰입해서 읽고 며칠을 상념에 잠겨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마른 열이 나는 몸살을 앓았고 입맛이 없었고 기운이 없어 햇볕을 쬐러 정원에 나가 앉았고 평온한 오후가 괜스레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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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님의 장편소설 [봄날]을 이야기 할께요

5권의 두께감이 부담으로 다가왔던 봄날의 첫 페이지를 넘기고 숨가쁘게 읽어 5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부모님 없이 동년배 친구들과 처음으로 놀이동산에서 탓던 롤러코스트를 연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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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10일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봄날의 5권을 읽으면서 다시는 관련 도서를 볼 수 없을 것 같았음에도 봄날 5권 말미에 계엄군이 전남 도청을 진압한 이후 기술된 내용에 전남도청에 남아있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앞선 도서 4권보다는 간략하게 기술되어 그 이후가 두고두고 궁금했습니다. 더 잔인했을 테고 더 아팠을 테고 감염병을 피하듯 피하고 싶었을 기억으로 꽉 챴을 그날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추측해보곤 했습니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5월의 그때 그 광주... 다시 만났구나 생각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임철우 님의 봄날 이후 제가 궁금해했던 연작을 발견한 것 같은 슬픈 설렘이었습니다.
1980년 1월 광주 중흥동에서 서울로 이사 왔다는 당시 11살이던 작가가 그해 봄 자신이 살았던 지역 전남 광주에서 일어났다는 일을 친척들에게 듣습니다. 살았던 광주 중흥동에 새로 입주한 집은 아들이 셋 있었고 문간채는 어린 남매에게 세를 내주었는데 중3이었던 주인집 막내아들과 어린 남매의 동생이 동갑내기여서 잘 지냈다고 했다. 그해 봄 우리가 알고 있는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이때 문간채 살던 남매가 실종되면서 주인집 막내아들은 친구의 찾겠다고 나섰다가 아수라 현장을 목격했고 이후 상무관에서 실려오는 시체들을 관리하는 일을 도왔다. 게엄 군이 공격할 거라는 소문을 듣고 아들을 찾아 나선 주인집 어머니에게 아들은 저녁에 곧 가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작가는 성인이 되어 이 기억을 꺼내었고 마치 자신이 묻어 두고 싶었던 상처에 플래시를 비추어 확인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심하다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해서 새롭게 나아가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썼을 거라 생각합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있었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목차에 나열했듯이 인물 중심으로 어린 새, 검은 숨, 일곱 개의 뺨, 쇠와 피, 밤의 눈동자, 꽃 핀 쪽으로란 이야기로 구성되고 다각도로 인물의 1인칭 시점에서 그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그날의 생존자인 교대 복학생과 성희를 찾아가 증언을 해 달라는 작가가 마냥 힘들었을 증인들입니다. 그러나 인물이 어떤 것을 보고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말하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겪은 일을 고통이 강하더라도 내가 직접 말해야 합니다. 더 잘 살기 위해서는 괴로움을 잘 느끼고 잘 견뎌야 합니다. 제목에 [소년]도 이 모든 사실을 오롯이 드러내니 너희들은 어떤 선택을 할 거야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작가도 용감하게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감이 움츠려 드는 공포가 느껴지는 죽음, 고문, 후유증... 증언자들과 죽은 이들을 위해서 가감 없이 단호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자와 죽어간 자의 아픔이 공존하는 순간을 몸서리치게 사실적이고 무섭게 그려내주고 있습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참척의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끔찍한 비극을 겪었을 어머니를 생각해 봅니다. 아들의 마음속을 들어가 보려는 어머니는 곱씹을수록 정신을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처를 극복하거나 영원히 극복하지 못하거나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진지하게 그 마음을 따라가 보면 쉽게 위로가 될 수 없고 살아 내기 위해 소년들이 했을 죽. 을. 각. 오를 어머니는 매일매일 하며 진실을 밝히려 애쓰고 기록하고 짐승 같은 울음을 우셨을 겁니다.
작가가 광주에 남아 학원 강사를 하는 당시 죽은 동호 학생의 둘째형을 찾아가 동생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글 쓰는 것을 허락받고자 했을 때 "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 주셔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계속되는 그날의 이야기를 멈추는 것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겹다 그만하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실을 밝히는데 지겨울 것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다 밝힌다고 해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심정을 바라보며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은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회복을 위한 선택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 근대사를 이야기하는 역사책 같은 [봄날]을 다시 한번 떠 올리며 따뜻한 그날의 시간을 안겨주지 못한 미안함을 쓴 [소년이 온다]를 마음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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