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으면서 작가와 아니 글과 썸을 타고 있는 제 모습을 확인하고 많이 설레었습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표제로 선정된 아버지와 치악산이란 소설 외에 오탁번 작가님의 다른 소설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따뜻함과 뭉클함이 깔끔한 와인처럼, 물 타지 않은 원액의 과일청 같은 진한 향기로움이 참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체가 이런거구나 취향도 짚어 봅니다. 너무도 평범하고 미화된 문장도 꾸며진 인공적인 이야기의 흐름도 없지만 가깝게 느껴지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에 단편소설이 한편씩 마무리되어 책장이 넘겨질 때마다 감동적이면서 상쾌하기까지 합니다.
아버지와 치악산은 부자관계에 집중된 이야기입니다.
관계속에서 이루어지고 형성되고 성장한 내면의 기록들이 일상적이고 평범했을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세대 간의 이야기로 확대되어 가족의 의미와 아버지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정의, 철학, 신념이 중요한 아버지 세대와 자유롭기를 바라지만 완벽하게 아버지를 닮고 싶고 닮아가는 아들 세대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대는 선이 없음에도 관계 속에서는 선 긋기를 좋아하는 게 가족인가 봅니다.
산림계장으로 일하는 나는 매주 치악산으로 자연보호 운동을 갑니다. 치악산의 경관과 웅장함에 눌려 무섭기도 했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매주 치악산을 오르는 그의 모습은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위와 위엄 있는 완벽한 모습에 눌려있었던 모습과 교차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다리 골절로 연약해진 모습을 보고 조금 다가갈 기회를 엿보는 아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버지도 치악산처럼 자신이 찾아갔을 때 편안하게 받아주고 응석을 받아주기를 바라는 아들의 바람이 엿보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단호했고 강인했고 자타 인정하는 완벽한 사람이었기에 아들이 들어갈 빈틈은 없습니다. 교육자로서의 신념인지 고집인지 알 수 없는 아버지의 한결같은 태도는 숨이 막힐 지경이고 아들은 늘 열등감을 갖고 살게 되지만 청령함과 모범적이고 의지적인 아버지의 모습에 치유받을 틈도 없이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온 모습은 아버지를 닮아 가고 있었고 이젠 늙어가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기대 주기만을 바라봅니다.
그런 아버지의 갑작스런 비보에 아들은 혼란스럽습니다.
떠오르는 한국영화 '취하선'의 주인공 장승업이 매향과의 마지막 재회, 세상과의 마지막 재회. 매향이 간직했던 찌그덩한 그릇을 보고 승업은 그 안에서 자신이 그토록 도달하고자 하는 경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의 운명인 듯, 스러져가는 자신의 운명인 듯 그는 홀연히 세상을 등지고 가마 안으로 사라져 가는 영상이 오버랩됩니다. 주인공 장승업이 보았던 경지의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봤던 것처럼 금지 분교의 화재 현장으로 뛰어든 아버지는 무엇을 생각했고 자신의 삶이 마무리되기를 바라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또한 가족의 의미를 알고는 계셨는지 아신다면 이리도 잔인하리 만큼 허망한 죽음처럼 보이는 마지막을 결정하셨어야 했는지 묻고 싶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일상 생활에서 있을 세대 간의 평범한 이야기지만 꽤나 무거운 소재였고 이런 소재임에도 성숙하게 이야기를 끌어내 오탁번 작가입니다. 나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절 한국 가족사 갈등까지 투명해서 보여주는데 직접 보이는 표정 없이 글 만으로 이렇게 잘 전달해 주었습니다.
또한 한 인간이 세상에서의 삷을 작별할 때의 방식이 어때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게 됩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인식은 하고 계셨지만 아들과 가족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아들이 느꼈을 비통함과 슬픔의 크기는 가늠하지 않는 삶의 마지막이었고 실제 아들은 아버지와의 직접적인 대화나 공감은 이뤄보지 못한 채 아버지에 대한 위로를 치악산에서 받으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일방적인 아버지의 태도로 아들이 상처를 받았지만 실제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에게도 서운함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오탁번의 단편 중 '해피버스데이'에 아들과 어머니처럼 보이지 않는 무전교신같은 교감을 나누는 사이였다면 좀 더 해피엔딩이었을 이야기였겠구나 아쉬워해보며 서로에 대한 진심을 생각하면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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