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주제가 한층 넓고 깊어진 작품세계로 표현되어 불안한 긴장감을 갖고 전개됨에도 시대, 인물, 관계에 흔들리지 않고 한 가족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사랑의 깊이까지 확장하여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한 편의 동화 같고 영화 같은 이야기임에도 마냥 허구적이지 않은 진실성이 느껴지는 도서로 인물 구조 자체가 주제였습니다.
처음 시작은 두 형제 기현과 우현 사이에 의도하지 않게 엇박자로 흘러가는 인생의 엮임이 개인적으로 많이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양다리를 사고로 잃은 큰아들의 본능적인 생리적 욕구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아들을 업고 사창가를 주기적으로 다니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 기현은 창녀를 사서 형이 있는 모텔방에 넣어 줍니다. 두 형제의 관계 이해는 책의 중반부를 넘어서 시간을 거슬러 기술된 사건들의 전개를 알고서야 이해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 나머지 가족관계에 대해 작가는 나무라는 소재를 등장시키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을 이야기하며 주제를 이야기합니다. 젊은 시절 유부남을 사랑하고 지고지순하게 평생을 기억하며 사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짝사랑하고 한 사람만 바라보며 모든 것을 포용하고 묵묵히 지켜내 준 아버지의 행동이 언급되는 식물과 나무에 대한 사랑을 설명하는 아버지로부터 이해되고 기후가 다르고 토양이 다른 이국땅에서 자란 어머니의 야자나무로 다양한 사랑의 모양까지 이해하게 됩니다.
글의 구성에서 주제를 이해하기 위하여 시점의 변화와 등장하는 식물인 나무들의 종류에 연관된 복선을 이해를 하며 글을 따라가게 됩니다. 처음 기현과 우현의 갈등관계 속에서 형은 자신의 처지와 남녀 알몸이 엉켜있는 것 같은 소나무와 때죽나무를 보며 불구의 몸이 되어도 정욕을 느끼는 자신의 처지와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합니다.
'매끈한 나무줄기가 날씬한 여자의 나신을 연상시켜'
'그런데 저 매끈하고 날씬한 때죽나무가, 무슨 사연일까, 굵고 우람한 소나무를 휘감고 있거든. 심상치가 않아'
'내 몸속의 이 치욕을 , 이 슬픔을 어떻게 하면 좋으나?" 형의 목소리가 때죽나무가 소내무를 휘감고 있을 검은 숲 속으로 스며들었다. - 47~48p 중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형의 기습적인 발작과 무단 외출 사건을 통해 묵묵하게 지켜보는 아버지로 시점이 옮겨지며 아버지의 자식과 부인에 대한 사랑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작가가 말했듯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단어를 이해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친아들이 아닌 아들을 사랑하고 지켜보는 인내의 마음은 고스란히 식물을 사랑하고 가꾸는 그분의 손길처럼 쉴 새 없이 이어졌고 표 나지 않게 관리되는 식물들과 나무들처럼 가족에게도 헌신되고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가족의 정신적 중심이었고 흔들리지 않는 사랑의 근원이었습니다. 가시줄을 넘어서 숲 속으로 들어간 두발이 없는 아들을 찾으러 온 아버지는 오래전에도 지금도 아들을 한없이 이해하고 사랑합니다. 사람의 접근이 제한된 숲 속 물푸레나무는 아버지의 사랑을 넘어선 인류사랑의 모습을 전하기까지 합니다.
나무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하고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숲의 어둠 속으로 꽃처럼 떨어졌다. "내가 품에 안자 우현이는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흘리게 내버려 두었다. 눈물이 그를 정화하기를 기대했다. 그의 슬픔과 고통과 갈망이 눈물과 함께 그의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를...... 눈물이 잦아들자 우현이 말했다. 나무가 되고 싶어요. 내 품에 안겨서 그 말을 되풀이했다. 나무가 되고 싶어요..... 나는 말해줬다. 너는 이미 나무다. 나무를 꿈꾸는 사람은 나무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고, 나무의 영혼을 가진 사람은 이미 나무인 것이다." 그렇게 말할 때 나는 아버지가 진심으로 형을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250p 중
아버지는 한쪽 팔을 들어 내 머리에 올렸다. 마치 무성한 잎을 달고 있는 나뭇가지가 머리에 닿는 느낌이었다.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나는나의 심장소리만이 아니라 아버지와 형의 심장소리도 들었다. 밤의 숲은 더 이상 두렵기 않았다. 숲은 천근했고 밤은 아늑했다. 나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하늘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떠 받치고 있는 태고의 거대한 물푸레나무를 이미 보아 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형이 숲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고 했던 그 거대한 물푸레나무는 그 숲 속 어딘가에 심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싶어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숲 속 어딘가에 심어져 있는 물푸레나무를 어느 순간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물푸레나무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 258~259p 중
형의 옛 애인 순미가 꿈에서 본 야자나무는 어머니가 추구하는 사랑의 결실입니다. 어머니는 자라지 않을 법한 이국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엉켜 지켜냈을 야자나무의 근성에서 사랑을 정의합니다. 어머니와 오버랩되는 아들 우현의 사랑, 형의 여자 친구 순미를 짝사랑하고 무시당하는 기현의 사랑은 오래전 순수하게 유부남을 사랑하고 사랑의 씨앗처럼 느껴지는 아들을 키워내며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 마지막을 우여곡절 끝에 함께 마무리하는 어머니의 사랑과도 같고 그 사랑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사랑과도 같습니다.
예컨대 두 사람의 사랑처럼 여겨지는 것. 사랑을 걸었다고 했다. 그들의 사랑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그 나무에도 전이시켰던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 나무가 정말 자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 175p
책 제목을 이해하는 데는 책의 중반부가 되어서입니다.
삶 자체가 사랑이고 그 사랑을 지켜내려는 노력이 사랑입니다. 작가는 그 삶을, 그 사랑을, 평생 한 자리에서 버티어 자라는 나무처럼 이겨내야 하고 흔들리지 않도록 때로는 숨죽이기도 하고 때로는 잎을 한껏 펼쳐 숨을 쉬어야 하는 나무로 이야기합니다. 처음 이야기했던 때죽나무와 소나무의 모습처럼 각기 다른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함에도 어울리고 그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역설적으로 인간이 포용력 있는 역량을 받으면서 동시에 고난도 받았기에 인생이 좀 더 복잡하고 삶의 형태가 다양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서있는 나무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친 다른 사랑도 나무처럼 사연이 있고 깊이가 있고 연륜이 쌓이듯 나무테가 속에서 생겨납니다.
이승우 작가의 식물들의 사생활은 개인적으로 나무, 숲 속, 가족, 사회로의 공간 여행이 아니고 식물을 통해 본 사람의 삶과 사랑의 관계에 대한 비밀을 풀어나가는 시간여행이었습니다.
스스로의 마을을 확인하고 아들의 마음을 지켜주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은 동시에 과거 지키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무라는 매개체를 통해 승화시키게 됩니다. 기현의 기술 외에는 앞으로의 진행이나 해결책을 보여주지는 않은 결말이지만 마지막에 아버지와 기현은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한자리에서 음식을 나눔으로 불안한 가족의 모습에서 연결되어있는 사랑과 신뢰를 직감하게 됩니다. 기현이 시작한 음식 장만이지만 아버지가 나서고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처럼 보였던 우현이 기운을 차리고 그 자리에 함께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슬픔을 이겨낸 엄마도 자리에 함께 하는 것은 각종 나무들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듯 조화로워지는 가족의 모습입니다. 마지막 순미가 기다리고 있는 야자수가 있는 파라다이스 남천에 갈 것을 기대하는 결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불편한 서두였음에도 마지막은 깊은 성찰과 삶을 바라보는 안목을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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