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결말을 그려놓고 글을 썼다고 단정하고 시작한 읽기였는데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를 즐기는 작가였습니다. 글 쓰는 과정 과정의 자신을 주인공과 함께 흥미롭게 바라보고 썼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시차를 두고 깨달음을 얻는 미와!
성불사 사람들, 고양이 상철이, 남자 친구, 그리고 불교적인 색채의 이야기가 서로 맥이 끊기는 이야기 작법으로 유일한 혈육인 엄마의 죽음을 맞이한 혼자 남은 딸이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승화시키는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존재의 의미, 자아성찰, 불교 색채가 구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넓게 표현된 넉넉한 글이었습니다.
풍경소리는 풍경소리일까 바람 소리일까
풍경소리는 풍경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바람이 묻혀온 별소리일까....
이곳에서는 누구나 왜라고 묻지 않습니다.
그렇군요라고 묻습니다.
궁금해하는 것을 궁금해하는 것은 이토록 힘들군요
두 개의 다른 관점인 3인칭과 1인칭 미와의 독백이 교차되는 기법으로 그때그때 직접적인 상황 묘사가 오버랩되고 시각, 청각, 미각이 자극으로 전달되어 다시 내면에서 운율을 곁들인 시처럼 드러나는 글입니다.
반복 속에서 미묘한 감각을 캐치해냅니다. 일상의 기록들을 틈틈이 적은 소리와 풍경 묘사는 시각 청각을 자극합니다. "스삭스삭" "스와와와" "오이 오이" 등등 소리를 표현한 언어들이 엄마와의 이별을 정리하지 못하고 번뇌하는 미와가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쉼표 같은 청량감을 줍니다. 절 음식과 절 식구들과의 대화에서 모난 마음이 토닥토닥 다듬어집니다. 가을 산사와 풍경소리 속에서 꾸미지 않고 발견한 것들이 미와가 잘 몰랐던 엄마와의 이별에 대한 감정선을 정리하게 도와줍니다. 이때 분명한 것이 없는 맥락이어서 앞뒤의 사정이 궁금해지나 작가는 설명을 하지 않고 독자가 글에 내용처럼 '그렇군요' 하게 됩니다. 글을 마지막까지 읽고서 이해를 했다고 끄덕이게 되는 글입니다. 아니 어쩌면 형식에서 벗어나서 혼동스럽거나 너무 난해 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글입니다. 언뜻 봐서는 두서없이 썼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잘 짜인 구성이 완벽한 글이라는 생각으로 풍경소리를 접한다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난 환경이 사람과 글을 시인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자가면역 역을 키우는 과정을 만드는가 봅니다. 자기 내면의 치유가 되면서 특유의 글의 운율을 만들어 시가 아닌 시적인 글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글입니다.
달라지고 싶으면 성불사에서 풍경소리를 들으라는 친구의 제안도 있었지만 불교적인 철학으로 볼 때 풍경소리는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 우리의 인생과 같습니다. 미와가 잘 몰라서 또는 알았다면 너무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도록 도와주는 힘을 키워주는 게 바로 풍경소리였습니다.
마지막에 미와가 남자 친구와의 전화통화를 끊고 감정을 정리하고 산사를 내려갈 때의 3인칭 시점이 말하는 내레이션에서 작가는 모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풍경소리를 구체화 하고 있으니 독자는 흐름을 타면 작가를 이해하는 자유로운 글 읽기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합니다. 파이팅 송처럼 듣고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 최선은 아닙니다. 의식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세포들이 원초적으로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지켜볼 줄 알기를 바라며 쓴 글로 생각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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