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번 마무리 짓지 못하고 중단되었던 'KBS 연중기획 - 우리 시대의 소설' 추천도서로 소개된 도서입니다. 미쳐 읽지 못했던 도서들을 최근에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요 이번 주는 정이현 작가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입니다.
최근 SF소설에 관심을 두고 몰입해 읽으면서 기계, 문명, 과학, 인간의 본질, 그리고 AI, 복제, 새생명 등 원론적이고 문명의 이기에 반전되는 주제들로 골똘해지곤 했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잡은 소설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읽으면서 문득 책 뒤에 출판연도를 확인하게 됩니다. 아 진짜. 현실을 잠시 잊고 있었구나..... 여성의 관점에서 적나 하게 여성의 성과 정체성을 이야기합니다. 사회 공동체에서 대응하며 살아야 하는 여성, 본심이든 가식이든 숨김없이 적나 하게 드러낸 작가의 생각들로 찬물로 세수를 한 듯 정신이 번쩍 드는 시간들입니다.
총 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고 모두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시선으로 보이고 겪게 되는 성과 결혼 연예 사건과 비밀스러운 감정들이 서술적이고 직관적으로 쓰였는데 모두 표면에 드러난 첫 느낌은 꽤 자유분방하고 저돌적이구나라는 생각입니다.
철저하게 여성의 입장에서 해석되는 남성의 행동과 사회 통념들이 주인공에 의해서 파헤쳐지듯이 그려지고 예상되는 행동들로 여성과의 데이트와 육체적 관계를 요구하는 남성들을 애태우기도 하고 남자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통찰력도 돋보입니다. 여성의 신념으로 자신을 지켜내는 모습은 씩씩하고 지혜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표제 소설 [ 낭만적 사랑과 사회 ]에서 가부장적인 부모님과 사회관습과 통념을 가르침 받은 주인공 유리 역시 잘 짜여진 사회 그물에 그대로 걸려 버린 듯 자신의 순결을 우상시하고 자신의 욕망에 이용할 수 있는 남성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순결이란 비장의 무기를 준비해두는 모습입니다.
" 세상이 아무리 바뀐거 같아도 여자는 여자야" "금 가는 순간" "그 순간 끝장나는 거야"
하룻밤의 욕정을 바라는 남자들에게 비웃듯이 대응하는 모습은 통쾌하기까지 했지만 결국 유리 자신도 지키려 했던 순결의 허구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반전 있는 결말과 지켜야 할 것 중 첫 번째였지만 신분상승이나 권력을 얻기 위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로 순결이란 성을 사용했다는 점은 여성이 가진 우스운 현실이어서 더욱 공감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정이현의 소설 속 여성들은 자본주의와 남성이 주권을 쥐는듯해 보이는 성에 대해 꾸준히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태도로 말하고 있습니다. [순수]와 [트렁크]에서 조용하게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도 여성성을 이용해 남성이 가진 주권을 가져오려 노력하고 자신의 지위와 경제적 부를 상승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연약 해 보임을 무기로 전략적인 욕망 실현에 사용합니다. 경제 성장을 남성이 주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일축시키고자 하는 시대 반영 의지였을 겁니다. 분명 나쁜 여자지만 욕만 할 수 없습니다. 당황스럽지만 마냥 비판만 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무궁화, 홈드라마]에서는 역설적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구조와 왜곡된 욕망까지 드러내 보입니다. 여성의 모습으로 말하지만 실제 공공연하게 자본주의와 자유를 빌미로 잘못 흘러가고 있는 남성중심주의 사회를 노골적으로 풍자하려는 의지는 아닐까 생각입니다. [무궁화]속 그녀가 나눈 아름다운 사랑은 지극히 주관적이었고 동성애의 모습이었고 필요에 의해서 단절될 수 있는 사랑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남성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성의 주체와 대상이 바뀌고 있음을 말하면서 동시에 필요성에 의해 쉽게 접근하는 모습을 비판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홈드라마]에서 화려하기만 할 것 같은 결혼은 계속되는 마찰과 불화로 아슬아슬하게 그려지고 남성의 주도로 마무리되어 여성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결국은 남녀가 같은 성접촉 바이러스에 의해 증상이 나타나 치료를 받는 모습에서 결국은 성 자체에 대해 적용받고 대처하는 방향은 남녀가 동일하고 공평하게 적용됨을 보며 사회적인 통념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는 관습이나 여성의 위치를 비판하는 모습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소설이지만 무조건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었고, 남성과 성에 대해 대응하고 반발하는 모습이 마냥 비극적인 결말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정이현이 생각하는 시대상과 여성의 위치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게 됩니다.

능동적으로 대처하려 했지만 결국은 자아실현은 실패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남성주의적인 위계질서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그려질 모습이 아직은 어긋나고 방법의 부재가 보이긴 하지만 인식을 전환시키고자 했던 노력은 분명했던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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