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소설 중에 SF 소설을 좋아한 게 언제부터일까 곰곰이 따져보기 위해 더듬다 보니 초등학교 5학년까지 올라갔다. 작정하고 읽은 건 아니지만 학급 문고 50권 중에 지금의 SF 장르로 분류할만한 도서들을 무슨 감각에서인지 골라 읽은걸 보면 그때부터 호기심과 상상력을 가진 자로서 이유 있는 선택이었다.
최근 SF 소설을 찾아 읽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김보영 작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중 한 사람으로 SF 소설 장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 SF작가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라고도 하니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다섯 번째 감각'은 웹사이트나 웹진 등에 발표된 김보영 작가의 단편들을 묶었다고 하는데 SF 소설이 많이 알려지지 않는 초기부터 활동이 많았고 최근에 출판된 SF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들에 대한 언급이 이미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어서 놀랬다.
김보영의 SF 소설집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또 다른 생각 많은 사람을 찾았구나 싶었다. 그 사람의 책은 친절하지도 않고 유혹하지도 않고 난해하기까지 한데 싫지 않은 매력도 있지만 겸손해야 하는 마음까지 필요했고 사고의 확장도 요구하는 나름 까다로운 책이 분명했다.
미래를 보는 사람, 앞선 사람.... 이런 수식어가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김보영 작가의 작품을 읽다 보면 내가 현실에서 너무 자극 없이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야기 하나하나 당연한 것이 없었다. 내가 누려왔던 생활,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과 걸어왔던 순간이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다는 듯 하나하나 파헤치고 서술하고 반전시키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기회를 이야기하고 꿈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일부 단편은 작가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스토리에 빠져드는 재미보다는 소재의 다양성과 확장성에 집중했다고 보이는 글들이다. 지루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긴 문장들, 그리고 과학적인 설정에 공상이 감미된 소재를 이야기하는 부분은 낯선 과학적 논리를 이야기하게 되고 일부 독자들에게는 혼돈을 주거나 자연의 섭리를 벗어났다는 불편감을 줄 수도 있을법하다. 하지만 반대적인 의미로 편을 들자면 꿈을 이루기 위한 창의적이고 도발적인 발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10편의 단편소설이다. 첫 소설인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는 특수 기면증이란 의학적 병명을 가진 누나가 갑작스러운 의식 단절의 순간을 나무상자를 잘라 창문과 숨구멍을 내어 규칙적으로 들어가 의식을 잃는 동안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을 보호한다는 이야기부터 작가의 발상의 전환이 눈여겨봐 졌다. 재해석을 하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라는 생각이다.
땅 밑에, 촉각의 경험, 다섯 번째 감각, 우수한 유전자, 마지막 늑대, 거울애는 최근 작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많이 준 듯 익숙하지만 깊이는 다르다. 이 부분은 작가의 필력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다. 스크립터와 노인과 소년, 몽중몽은 작가의 경험 또는 종교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소설이었다. 경험이 바탕이 된 창의성은 좀 더 긴 서술과 원리에 대한 첨부로 쉽게 읽히지 않을 수 있지만 공감만 한다면 더 탄탄하고 깊은 사고를 동반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SF 소설은 왠지 외국을 선두주자로 생각하여 한국 배경에 한국문화와 생활이 나오는 게 낯설게 느껴지는 편견을 가진다. 김보영 작가가 활동하던 시기를 확인해보면 지금보다 더 낮설 수 있었겠구나 하는 고충을 생각하면 작가의 편견 없고 튼튼하게 짜인 상상력이 놀라울 뿐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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