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부터 강력한 보색 대비 도서입니다.
제목은 섬뜩하고 호기심 갖기에 충분했던 도서입니다. 읽어 보면 SF 호러지만 현실과 너무 닮은 고민들과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들로 머리가 하얀 해집니다.
끔찍하고 충격적이어서 섬뜩한데 아름다운 이야기들입니다. 전설 형식을 빌려오기도 했고 전형적인 판타지 소설의 형식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서정적이거나 권성징악을 이용한 복수극 내용도 있습니다. 공통점은 한편 한편 읽고 넘길 때마다 생각은 많아지고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옅은 무력감이 함께 와서 제 힘으로 풀어낼 수 없는 한계가 느껴져 외롭기까지 합니다.
10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표제로 이름 올린 저주토끼를 비롯해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었는데 지금까지 읽은 SF 소설이 인간과 안드로이드 인간과 로봇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중심의 미래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소설이었다면 정보라의 저주토끼에 수록된 단편들은 인간 내면의 오래된 업보처럼 이어져오는 문제와 질문들이 과학과 문명의 변화 속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져 오고 그 안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 느끼는 자괴감과 괴리감을 공포와 아름다운 호러로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저주토끼]는 약자가 자본주의와 권력에 당할 수 박에 없었던 일을 기억하는 이가 억울하게 죽음을 선택한 친구를 위해 권성징악을 생각하며 저주인형 토끼를 만들어 강자에게 복수하지만 복수 이후에도 씁쓸하게 남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반복될 현상에 대한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주토끼 뿐 아니라 단편들을 읽고 나면 '맥락이 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현재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회현상들이 사실 그 근원은 아주 오래전부터 잘못된 일이고 악행임을 알지만 반복되어 자행되고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서 오는 무력감에서부터입니다. 또한 저주토끼처럼 복수를 할지라도 다시 돌아오는 쓸쓸함은 계속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머리] 한 번쯤 상상해 봤던 내용인데 작가의 환상 속에서 유연하고 오싹하게 그려진 머리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 나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돌아보게 만든 소설입니다. 나의 배설물과 부산물로 점점 나 아닌 나를 만들어가는 물체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라서 나를 대신합니다. 머리는 배신하는 자식일 수도 있고 헌신하지만 결국 외면당하는 부모일 수도 있고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한 인간이 복수를 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머리는 가족이나 집단의 테두리 안에서 포장된 개개인의 내면을 솔직하게 살펴보게 합니다. 내 행동으로 머리가 만들어지고, 머리는 현실에서는 계속 부정당하는 물체입니다.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의 사소한 행동과 찌꺼기가 생각지 못한 끔찍한 결과를 만듭니다. 나와 머리의 양쪽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모두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차가운 손가락] [안녕, 내 사랑] 은 현실과 환상이 부대끼는데 아주 공포스럽습니다. 두 소설의 접근 대상이 지금의 혼란스러운 청년들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치열한 경쟁과 급변하는 사회에서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언제든 아무렇지 않게 내 자리를 빼앗길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럽기까지 한 지금의 청년층입니다. 관계는 복잡해지고 대상은 단순해지는데 진정한 상대를 찾지 못하고 배척당할 수 있고 외면당할 수 있고 도움을 받지 못하고 관계에서 사라지기도 합니다. 안녕 내 사랑은 인공 반려자를 사랑하고 배신당하는 이야기 입니다. 미래에 AI 인공지능을 가진 인공반려자를 갖는 인간은 인공 반려자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사랑을 찾는 청년들의 잘못된 미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반려자는 소유와 진화의 대상이 아니기에 자신의 충족을 위해 목적을 갖고 상대를 소유하려 한다면 진정한 사랑은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몸하다] [즐거운 나의 집]은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저주토끼]와도 연관 지어 이야기해봅니다. 최근의 읽은 김초엽 작가가 소설의 인물들을 여성 위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독자들의 글을 많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중립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앞선 [지구끝의 온실]에서도 이야기 했었는데요 정보라의 소설에서도 여성에 대한 이야기와 여성이 미래에도 여전히 가지고 가게될 문제점에 대해 환타지를 이용하여 언급하고 관심갖기를 바라며 쓰여진거라 볼 수 있습니다. 몸하다는 여성만이 겪는 월경와 원치않는 임신, 그리고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에서 여성의 위치와 가족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문제의 대상으로 취급당하는 여성인권문제까지 다각도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약물 복용을 하고 그로 인한 부작용은 성경에 선악과를 따 먹은 이브가 갖게 된 대표적인 고통인 임신과 출산의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당당하고 아름답고 대우받아야 할 여성의 역할이 주변 환경에 조정당하고 조롱당하고 맘고생을 하며 출산을 하지만 정상적이지 못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난 핏덩어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도 아무에게도 도움받지 못한 여성은 슬픔에 빠집니다. 즐거운 나의 집의 여성도 최선을 다해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삶을 위한 집을 구매하지만 집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남편의 외도와 배신의 원인이 되고 결국 혼자 남아 모든 슬픔과 공허함을 가지고 자신의 집에 갇혀 버립니다. 여자의 집은 공포가 되고 그 쓸쓸한 집에서 아이라는 유령의 그림자에 의지하는 모습이 많이 서글퍼집니다. 나약하게 비칠 수밖에 없는 여성을 초현실적으로 그려낸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덫]과 [흉터] 그리고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는 공포적이고 회화적입니다. 적당한 속도감이 느껴지는 공포 속에 인간의 내부에 숨겨진 욕망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는 작가의 역량이 보입니다. 소설은 우리가 현재 사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초자연적인 이미지로 잘 그려낸 소설 속 인물들의 광기 어린 눈빛은 우리의 현실에 그대로 투영되어 우리의 본성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자각해야 할 인간이 가진 현실적인 공포를 환타지하게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재회]는 마지막으로 유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령을 보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일반적인 인간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을 갖게 되고 경계와 위기 사이에서 혼란스럽습니다. 그 남자는 아이였고 어렸지만 유령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을 확인했기에 커서는 매듭이라는 반복적인 행동으로 안도감을 갖습니다. 인간의 삶은 실존적인 테마입니다. 삶과 이어지는 영혼에 대한 이야기는 미래에도 계속적으로 중요한 주제일 것입니다.
SF 장르가 이렇게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던 작품입니다. 특히나 현실의 문제를 거침없이 창의적으로 표현하는데 작동되는 꼭 필요한 장르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작품을 만드는데 가장 핵심은 스토리라고 생각했던 개인적인 생각이 장르가 핵심이 되어 이야기를 끌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험은 앞으로 책 선택에 크게 반영될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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