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수다 책장

백수린 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꼬마대장 2022. 5. 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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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 중 풀이 무성한 텃밭을 지나가다 상추와 열무 사이로 비집고 나온 풀이 눈에 들어와 잡아당겨봅니다. 밤사이 내린 비로 촉촉해진 덕에 힘들이지 않아도 잡초들이 쏙쏙 뽑힙니다.
우리 마음도 사랑과 이해로 촉촉히 적셔 있으면 마음 사이 잡초가 자라고 있을지라도 쉽고 부드럽게 뽑힐 겁니다. 하지만 불통과 단절된 마음이 오래되면 딱딱하게 굳은 흙처럼 갈라지고 말라비틀어질 테고 그사이 삐집고 자란 잡초도 안 뽑히려 안감힘을 쓰다가 옆에 있는 성한 것들도 상하게 하며 뽑힙니다. 때로는 줄기에서 끊어지기도 하고 뿌리가 완전하게 뽑히지 않아 금방 성한 잡초로 다시 자라서 다른 성장하는 것들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이 오면 나는 관계가 서먹한 엄마와의 상황을 잠시 떠올렸다가 머리를 흔들어 지워버리곤 하는데 아침에 산책길 잡초를 보면서 드는 생각에 과거와 현재의 엄마와 나의 관계를 떠올리며 마음을 유연하게 고쳐 먹습니다. 그리고 백수린이란 작가의 이름만 보고 선택한 책치곤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친애하고, 친애하는]은 오늘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에 충분하여 후회 없다란 생각으로 미소 지어 봅니다.

백수린 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우선 사전적의미를 먼저 알아봅니다.

친애하다 (親愛하다) - [동사] 친밀히 사랑하다.

엄마의 전화 한통에 할머니가 폐암에 걸린지도 모르고 할머니 댁에서 두 계절을 머물면서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자신을 마주 보게 되고, 결국 나(인아)가 결혼을 통해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여성으로서 딸로서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굵은 사건이나 갈등 없이 수필처럼 잔잔하게 이야기합니다.
한 집안의 여자, 엄마라는 삷은 녹녹하지 않습니다. 꿈을 포기당하기도 하고 남편과 갈등이 있을 수 있고 사회에 편견과 오해를 감당해야 할 때도 있으며 희생을 강요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친애하고, 친애하는]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대결이나 희생이나 사회문화적 편견으로 인한 갈등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각 세대의 여성들이 서로를 사랑했지만 표현이 서툰 그녀들이 나름대로 당당함을 지키고 사랑하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쉽게 서로를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환경에서 상대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을 애써 감추고 각자의 시선에서 상대를 읽고 해석하는 선에서 공감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서로를 받아들이는 부분은 서운했고 각자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서 낯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나(인아)가 친애하는 할머니와 엄마를 이야기 합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여자는 남편을 더 잘 따르는 딸이 예쁘지 않았을 테고 여자는 내색하지 않으려 했겠지만 감정이 북받치는 세월이 길다 보니 어린 딸에게는 표가 났을 겁니다. 자신은 많이 배우지도 못해 남편이 원하는 지적인 여성도 못되어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세련되고 유능하지 못했기에 어린 시절부터 똑똑한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 딸을 더 외면했을 거란 생각입니다. 하지만 나의 엄마도 자신의 편인 아빠와 달리 살갑게 사랑해주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어린 눈이지만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살갑지 않으니 딸은 반쪽짜리 사랑하는 법을 배웠기에 커서도 자신의 사랑에 서툴렀고 서툰 만큼 엄마를 원망했을 겁니다. 엄마를 이해하고 다가가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엄마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 엄마는 자신의 딸 나(인아)에게도 서툰 사랑을 주게 됩니다.
나(인아)는 다른 집처럼 엄마와 각별한 사이가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이지만 엄마는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대상입니다. 어릴 적 핏덩이이던 나를 맡기고 공부를 하러 간 엄마보다 핏덩이였던 자신을 맡아 유년시절을 함께하며 키워준 할머니와 더 친밀합니다. 그런데도 엄마니까 늘 엄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엄마가 그리웠고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엄마에겐 가족보다 일이 먼저 었습니다. 엄마는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연구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입니다. 할머니에게는 넘치는 사랑을 받은 나지만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해 늘 외로웠고 엄마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하지만 엄마에게는 늘 실망만 주는 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물들이 직접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서로의 상처를 꺼내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나(인아)의 시선에서 할머니와 엄마의 말이나 행동을 회상하며 그 당시 가졌을법한 감정선을 짚어보는 구성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해주고 싶던 이야기와 애정의 모양은 뚜렷하게 나오지 않지만 분명한건 그녀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우리는 그녀들이 겪었을 감정과 갈등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과 다르게 어긋나기만 하는 감정골과 지점, 거기서 느끼는 가족만이 느끼는 겹핍과 좌절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함께 공감합니다.

어쩌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역에서 환승하기 위해 계단을 바삐 올라가는 수없이 많은 이들의 뒤통수를 보거나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가 바뀌어 내 쪽을 향해 걸어오는 인파를 보다가 가끔씩, 나는 지구 상의 이토록 많은 사람 중 누구도 충분히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인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우리가 타인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 것일까?  - p26

작가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했습니다. 소설은 우리의 삶이 머물러 있지 않고 죽고 다른 새 생명이 태어남의 반복임을 말하며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상대를 모두 이해하고 완벽하게 수용할 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 내가 그러했듯이 할머니 역시 할머니의 한계 안에서 나를 사랑했을 것이라고, 그것은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입니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주지 못한 사랑을 손녀에게 주었듯이 엄마가 나에게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나는 나의 자식을 통해 전해 줄 것입니다. 그 형태는 다양할 것이고 후회의 보상이 아닌 이해의 선물일 것입니다.

나(인아)는 나 자신에게 나온 또 다른 생명을 통해 엄마의 존재가 어떤 건지 엄마의 사랑을 알아가며 상처를 회복하는 모양입니다. 자연스럽게 순간 그 감정을 알 것 같은 상황과 만나도록 글이 전개됩니다. 또한 친애하는 할머니와 엄마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디자이너 일을 시작하는 나(인아)는 자연스럽게 나를 찾아가며 '친밀히 사랑하다'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깊게 찾아보지 않아도 공감 가고 되새기고 싶은 구절이 많은 소설입니다. 덤덤하게 쓰인 구절에서 우린 회복이란 단어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게 되는 따뜻한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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