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SF는 미래 문명 발달을 그리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연여름 소설뿐 아니라 최근 읽었던 SF소설들은 대부분 이질감 있는 이상을 그린 미래가 아닌 과거부터 현재에 관심을 기반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연여름의 [리시안셔스]에 수록된 단편들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관심 갖는 반려동물, 인종차별, 소수인종, 장애인, 동성애, 펜데믹, 사이버블링, 인권 등의 소재를 기반으로 SF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들은 SF를 대하는 태도의 다양함을 보여주고 있고 재미있기까지 해서 쉽게 몰입하여 읽게 됩니다. 특히 연여름 작가의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필체와 구성은 읽는 내내 믿음과 신뢰가 커집니다.
연여름 소설집 리시안셔스의 핵심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활자지만 시각적으로 그려지는 다양한 표현과 환경설정은 때로는 긴박함으로 때로는 서정적으로 독자에게 많은 세계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잘할 수 있고 조절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설정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인간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기도 하고 가장 나약하기에 이기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9편의 단편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 마다 갖게 되는 의견들과 시선을 남겨봅니다.
첫 번째 대표작 '리시안셔스'는 대오염이 일어난 이후 지구에서 사람은 몸을 인공 신체로 교체할 수 있는 인간과 , 그렇지 못한 미등록 생명체로 구분하게 됩니다. 미등록은 사람도 완전한 기계도 아닌 필요에 의한 존재이고 필요가 없어졌다고 판단되면 파기당하기도 하며 스스로 생명을 종료할 수 있다는 설정입니다. 스스로 생명을 종료하기 위해 센터에 가서야 '진'이라는 임시 이름을 부여받게 되는 미등록인 진은 자진 종료 마지막 단계에서 "규희"라는 인간에게 반려인으로 선택되어 완벽한 삶을 꿈꾸게 되지만 같은 미등록이고 인간이 되기를 갈망하는 'A11'의 등장으로 기계가 가질 수 없는 고민과 선택을 하게 되는 갈등을 겪게 됩니다. 반려인이란 단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반려동물과 같은 의미의 반려지만 인이란 단어에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갖지는 못한다는 설정은 신박했습니다. 계급처럼 구분된 삶은 선택이 아닌 태생부터 정해져 있고 정해진 선을 바꾸어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비싼 지불을 해야 하는 것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에도 변함없는 자본주의 논리에 부합됩니다. 평소 반려란 말의 의미가 따뜻했다면 리시안셔스의 반려는 가장 비참한 상태를 멋지게 포장할 줄 아는 인간의 이기심의 결과는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인간세상은 똑똑하고 쓸모 있고 능력 있는 사람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세, 드기온, 사라 등의 인물처럼 가장 절박하고 나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변화를 이루어 내는 인물로 지목되어 역전시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A11가 보여주고 있듯이 소설 속에 미등록은 스스로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반드시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설정으로 신의 시선이 아닌 인간 중심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시선을 알기 시작하면서 반려인 진의 마음에 평화는 깨지고 인간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인간과 갈등을 겪게 되지만 결국은 리시안셔스란 꽃의 꽃말처럼 변함 없는 사랑을 믿는 진의 희생으로 글은 마무리됩니다. 인간이 되고 싶지만 인간의 도움이 없으면 인간이 될 수 없고 가장 강인하고 어떤 위기도 대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규희를 포함한 인간은 반려인의 도움을 받게 되는 설정은 인간은 모든 것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우리 의식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듯합니다.
두 번째, '시금치 소테'는 자살 생존자 미하에게 자살 재발 방지를 위해 보호사가 배치되고 보호사를 통해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는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자해와 자살시도를 스스로 이겨내지 못한다면 부정적 기억의 연결고리를 끊는 '옵션'이란 수술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설정은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옵션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보호사로 배정된 정인의 속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하도 자신이 가진 우울감과 두려움의 근본 원인을 찾아보고 이야기하고 인간 내부에 갈등을 기계와 의학적인 도움 없이 대화와 사고의 정화로 스스로 바꾸어 가는 모습은 현재도 미래에도 계속될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연여름 작가는 자연스럽고 편애되지 않는 시선으로 읽은 이가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여유까지 포함하여 써주었습니다.
세 번째, 표백은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피하는 일을 대신하는 '휴인'과 작업장을 관리하는 최소한의 인간 관리자 근아, 그리고 자신의 죄책감과 사고의 오류로 생기는 힘든 감정을 휴인에게 토로하는 환자의 모습입니다. 세탁실에서 휴인들과 일하면서 연대감과 교감을 나누지 못해 힘들어하는 인간 근아의 모습에 반해 자신의 죄책감과 같은 감정을 이야기하고 속 이야기를 하면 감정 없이 받아주고 들어주는 휴인에게 위로받는 인간의 모습은 대조적입니다. 휴인은 폭언, 열악한 근무환경, 인간과 소통하면서 갖게 되는 스트레스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설정으로 인간이 휴인과의 관계로 갖게 되는 양면적인 모습은 앞으로 발전하는 AI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인식해야 하는 문제임이 분명합니다.
계속되는 '제 오류는 아주 심각한 것 같아요'는 인간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더 이상 쓸모 없어진 안드로이드 승무원 미레이와 발전보다는 느림을 선호하는 인간 사이에 감정이 교차되고 주고 받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안드로이드와 가장 다른 점은 감정을 느낀다는 부분입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변함없이 인간이 가장 지켜내고 싶어 하는 인간만이 가지는 특성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긴장을 하면서도 AI를 반전시키고 있고 AI에게 감정의 기능을 부여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인간은 안드로이드 미레이가 프로그래밍된 감정 외에는 느낄 수 없다고 판단 하면서도 인간과 같은 감정을 공유하도록 행동을 시현하고 표현하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이러한 도전하는 현실을 보면 오류를 가장한 인간의 진심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빙'는 초능력을 사용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만 만났던 사람들이 직접적인 만남을 가졌을 때의 긴장감 위험함을 유쾌하게 풀어서 전달해주었습니다. 초능력 인간이라니 크게 놀라고 뉴스로 나올 법한 설정이지만 실제 작가가 말하는 건 가상공간에서 만나는 사람과도 끈끈한 정을 나누고 소통을 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인터넷상의 공간 흔한 SNS부터 메타버스 공간까지 확대해서 적용해 볼 수 있었습니다. 소설에서도 볼 수 있는 건 가장 가까운 이웃이 이웃을 의심하고 위험을 가하기도 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처음 만났고 심지어 초능력 인간이기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부터 교감을 가진 사이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돕고 이익을 나눌 수 있는 여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미래지향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예시를 보여주었다는 생각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나니 '좀비 보호 구역'은 이제 미래가 아닌 현실 그 자체 이야기였습니다. '가빙 라이트'와 같이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풀어서 전달해 준 이야기였지만 좀비 펜데믹으로 암울했은 시간을 생각하면 여전히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다만 소설 속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소재로 예전에도 앞으로도 계속되고 꾸준하게 이어질 인간의 변함없는 취향, 개성, 그리고 용기를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작은 행복에서 희망을 찾는 모습이 살아갈 이유를 갖게 하는 여운을 주었습니다.
이외에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한 '비아 패스파인더'와 '면도'가 있습니다. 짧은 단편에 인종차별, 소수인종, 인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가의 필력이 느껴집니다. 이 주제들은 SF소설이 아니더라도 많이 다루어지고 있지만 시공간을 넘은 시간 속에서도 변함없는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점을 집중적으로 생각해보게 됩니다. 특히 '면도'에서 다룬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은 빠른 노령화 속에서 생명의 연장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선악의 문제가 아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계속 찾고 있다는 점입니다. 리시안셔스처럼 자가 종료를 할 수 있는 미래가 왔을 때를 준비해야 한다는 긴장감과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가도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 소설 '오프 더 레코드'에서는 창의적인 발상과 반전이 충격과 감동까지 주면서도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인간이 선을 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미래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에는 인간의 갈망이 투영된 소설이었습니다.
연여름 작가는 [리시안셔스] 소설집을 통해 인간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우리의 미래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단편소설 모음이 많은 영향력을 미칠 듯합니다. 읽다 보면 기계는 인간 같고 인간이 기계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기계는 알고 있는데 인간은 모르고 있는 부분이 있을 법도 합니다. 기계가 인간을 속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때 우리는 이건 오류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프로그래밍의 결함으로 인한 오류가 아닌 인간을 넘어선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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