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수다 책장

박현숙 장편소설 구미호식당

꼬마대장 2022. 2. 2. 11:19
반응형

"당신에게 일주일밖에 시간이 없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요?"
책 표지의 한 줄의 멘트를 보고 책장에 꽂힌 책을 꺼내 들어하던 청소를 뒤로하고 그 자리서 다 읽고서야 일어서 봅니다. 몇 해 전에 아이의 독서 목록에 있던 제목을 보고 사다 주고는 까맣게 잊었던 책이 있었네요. 청소년 권장도서였다고 했는데 읽고 보니 어른이 책입니다. 재치 있게 옷을 입은 스위트 한 멘트들이 눈에 띄어 작가가 참 따뜻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구나 생각도 해봅니다. 단 읽기 전 단점이 눈물 주의라는 건 알고 시작하세요.
대학시절 가족관계 시간이었는지 생리학 시간이었는지.... 암튼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죽음, 자살 등에 대한 주제가 나왔고 태어나서 한번도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은 학생이 있는지 손을 들어보라는 교수님의 질문에 단 한 명의 여학생이 손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거짓말 같지만 단 한 번도 죽음을 준비하거나 갑작스러운 상황을 고려해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의 표정은 마냥 천진하고 순수한 얼굴에 '저 친구 진심이구나'라고 생각을 했었답니다. 조심스레 이유를 물어보니 엄마 아빠가 열심히 살고 계시며 늘 긍정적이라는 가족 분위기를 이야기하며 그런 생각을 할 상황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의 안정적인 환경은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치자... 그럼 네 인생에서 모든 중심은 가족과 부모님이란 거야? 혼자만의 고민의 시간도 어두운 생각도 한 번도 없었다는 거야?... 교우의 대답에 한참 생각이 많아졌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그런 부분에서 주인공 도영과는 너무도 반대된 삶이어서 이 친구가 이 책을 읽는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쩜 죽기 전에는 모를 수 있겠다는 엉뚱한 추측도 해 봅니다.
처음 접해본 소설가 박현숙 작가지만 믿고 읽어도 될 만큼 몰입도 있게 글을 쓰십니다. 원활하고 막힘없는 문체에 시원하고 재치있는 대사들이 아이들도 어른도 빠르게 공감하게 됩니다. 불사조가 되기 위해 천명의 식지 않은 피가 필요한 여우 서호가 저승으로 가는 강을 건너기 직전에 15살 왕도영과 40대 셰프 출신 이민석을 만납니다. 도영은 이승에 대한 미련이 없었으나 아저씨 민석은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며 시간이 더 필요하다 했기에 서호는 뜨거운 피 한 모금을 약속받고 저승과 이승의 중간계라는 공간에서 49일의 시간을 주어 민석과 도영이 식당을 운영하게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다만 둘은 다른 사람의 얼굴로 49일을 지내야 하고 가게 밖에 나가서도 안 되는 제한된 시간을 약속받게 됩니다. 참고로 불교의식에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 7일마다 불경을 외면서 재를 올려 죽은 이가 그동안에 불법을 깨닫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비는 제례의식이라고 합니다. 이 기간에 죽은 이가 생전의 업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의 인연, 즉 생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영과 민석에게 주어진 49일도 같은 의미의 시간에서 인용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구미호의 식당은 사람과 시간의 관계속에서 평범한 일상을 즐기면서 그 비범함을 깨닫지 못했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한쪽만 바라보며 살다 보니 다른 한 면은 쳐다보지도 않고 편견을 갖고 사는 우리는 그 시간을 운명이라고 말합니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시간 49일 동안 도영과 민석이 찾아보고 찾아가는 이전의 삶에 몰입하면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도 찾아보고 우리가 기대하는 운명을 임의로 바꿔버릴 수도 있겠다며 읽어가지만 실은 운명이란 우리가 느끼고 바라본 시각에서 방향을 잡은 편견일 뿐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도영은 살면서 한 번도 부모님과 할머니 그리고 형에게 사랑을 받아본 적인 없는 필요하지 않은 존재여서 자신의 죽음에 아무도 동요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세월과 기억을 더듬어 보면 도영이 생각한 건 아무것도 맞지 않았고 다른 면은 돌아보지 않았기에 알 수 없었던 사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랑받는 사람이었구나'에 가슴이 아파집니다. 말 없던 친구 수찬도 구박하던 할머니와 형도 모두 각자의 방식과 환경에서 도영을 사랑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셰프였던 민석도 자신이 집착과 사랑을 혼동해서 여자 친구 지영을 자신의 세상에 가두고 함부로 했었고 첫눈에 반한 그 순간만을 기억하고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는 걸 인식하게 됩니다.
인물의 구조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절망감, 후회,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려 애썼는가가 더 눈에 보이는 도서 였습니다. 또한 소재로 나오는 음식 크림 말랑은 작가가 전하는 사람의 삶과 비교해서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얀 국물의 음식이었지만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본연의 음식 맛은 지키면서 빨갛게도 얼큰하게도 담백하게도 요리할 수 있고 누가 먹냐에 따라 고급스러운 사치 음식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는 음식이 되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는 속 내용물을 추측할 수 없는 신비함도 갖고 있는 크림 말랑은 사람의 인생으로 비유됩니다. 내가 크림 말랑이고 크림 말랑이 내가 되는 이야기는 다변화되는 삶 속에서 편견 없이 다가가서 포용하고 인지하고 유연한 태도로 즐길 줄 아는 삶을 살아주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죽기 전까지 세월은 누구에게나 계속되는 혼란과 편견과 미음과 사랑이 교차되는 삶의 시간입니다. 도영이 어릴적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스스로가 외톨이라 생각했던 것처럼 다시 태어나도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가운데 본질을 잊고 더욱 처참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민석처럼 자신의 감정에 집착하는 마음은 죽어서 되돌아보지 않았으면 어쩌면 살면서는 누가 얘기를 해줘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작가님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순간이 지나면 사정이 나아질 거다 혼란이 마무리되고 다른 상황이 펼쳐질 거다라고 생각하고 현재에 충실하지 않은 생활을 되돌아보고 마음껏 사랑하며 행복하기를 바라는 생각에 쓴 글이란 생각입니다. 특히 49일 마지막 날 온다던 여우 서호는 죽고 저승으로 데려가기 위한 사자가 오게 됩니다. 여우로 태어나서 여우로써의 삶을 행복하게 즐기지 못하고 불멸의 생명을 얻어 불사조가 되기 위해 천년을 노력한 서호도 결국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모습에서 도영과 민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고마움을 갖게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건들여 주는 울림이 많은 책 구미호 식당이었습니다. 꼭 한번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눈물주의 - 구미호식당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