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장편소설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쓸데없는 예민함이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소재를 추리해 본 지 꽤 되었는데 요 며칠에서야 읽어봅니다. 외로운 사람들이 뱀파이어를 만나면서 펼쳐진 바람 없이 추운 겨울날 피어난 아름다운 잔혹동화 같은 소설입니다.
이야기는 철마재활병원에서 연속되는 의문의 투신자살 사건 발생으로 시작됩니다. 재활병원에서 치료받는 환자들의 가족들조차 점차 찾아오지 않는 외로운 환자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환자 한 사람의 죽음은 자연스럽게 단순 자살로 여겨지지만 형사 수연은 한결같이 유서를 남기고 투신하는 이상한 죽음에 의문을 갖습니다. 수연은 어린 시절 암울한 환경에서 자신의 위로자이자 조력자였던 동네 문구점 은심 할머니와의 인정 때문에 병원에 자주 들리며 수사를 이어가고 수사 현장에서 만나는 완다라는 여자로부터 뱀파이어의 소행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워하게 됩니다. 믿기 어려웠지만 수사하면서 연결 지어지는 인물들 뱀파이어 헌터 완다, 그레타, 간호사 난주의 동태와 은심 할머니의 죽음과 연결된 뱀파이어 울란과 릴리까지 죽음의 이유와 죽임의 원인이 외로움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면모도 보입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소설의 스토리는 외로운 인물들이 뱀파이어를 만나면서 시작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하면서부터입니다.
첫 번째 사랑은 어릴 적 버려져 해외 입양으로 이방인으로 평생 자신의 존재감에 외로움을 느끼고 암울하고 습하고 칙칙한 냄새가 나는 구석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살고자 하는 쓸쓸함을 아는 완다와 추운 날씨에도 맨발에 추위를 모르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먹잇감으로 외로운 사람을 찾는 뱀파이어 릴리의 만남입니다. 두 번째 사랑의 주인공은 남녀차별로 부모에게 상처 받고 부모의 빛까지 떠않아 가족에게 의지할 데 없이 늘 혼자 이겨내야 하는 마음 둘 데 없는 절망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간호사 난주와 그런 난주에게 따뜻함으로 의지하게 해서 서서히 퍼지는 독처럼 다가온 뱀파이어 울란입니다. 각자의 상처와 슬픔에 마음속으로는 상대를 수도 없이 죽이고 싶고 죽고 싶었을 완다와 난주입니다. 반면 살아남기 위해 수없이 사람을 죽이고 피를 얻어야 했던 뱀파이어 릴리와 울란입니다. 서로 다른 입장의 인간과 뱀파이어의 사랑이 누가 더 도움이 필요하고 관심을 가져주여야 하는 외로움을 간직한 약자일지는 판단할 수 없기에 역설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완다와 릴리의 사랑과 난주와 울란의 사랑은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은 자신을 위로하는 상대, 자신이 위로해줄 수있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구원이란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사랑이라는 이름의 구원의 방식은 너무도 다릅니다. 완다와 릴리는 서로가 외로운 존재이지만 바라는 것 없이 각자의 모습에서 온전한 자신으로 남고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영원히 함께 하겠다 하지 않습니다. 난주와 울라는 사랑은 언제나 현재에 머물러있고 그 자체가 미래가 될 수 없어 약속하지 않습니다. 두 사랑 모두 서로의 날카로운 부분을 무디게 하고 외로움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랑 이야기지만 인간과 인간, 인간과 뱀파이어, 뱀파이어와 뱀파이어 사이에서도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기에 인간과 뱀파이어의 경계선에서 혼동스러워하는 인물들입니다. 이에 비추어 상대가 지금 좋은 모습이 아니라 가장 비참하고 좋지 않은 상황의 모습을 보인다 할지라도 그 모습을 사랑하겠는가 혹은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다짐할때 그 사랑의 조건이 무엇이고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수연과 은경선배, 수연과 은심 할머니 그 외 인물들 모두 외로움과 고독함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이들이 외로움을 느낄때 만나는 뱀파이어와 펼쳐지는 아름답게 포장된 잔혹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작가는 잔혹한 이야기를 중화시키기 위해 눈이란 소재를 사용하고 있는 부분도 눈여겨봅니다. 사람들이 죽은 이후에도 외롭지 않도록 외로움을 덮어주는 역할을 하는 눈을 보여주기도 하고 죽은 자를 덮어주는 눈은 그 죽음이 따뜻해 보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외로웠던 인생을 마감하게 하여 세상의 고독함까지 덮어주려는 듯 보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죽임을 당해 슬퍼하는데 덮어주는 눈은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것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게도 합니다. 소리없이 내리는 눈은 뱀파이어의 고독함과 인간의 본질적인 쓸쓸함에 다 알고 있는듯합니다.
뱀파이어는 두려운 세상을 이야기 할 수도 있겠습니다. 두려움의 대상인 뱀파이어는 인간이 마음속으로 진짜 절망적이고 고독할 때 나타나는 존재이겠구나 짐작해 봅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어느 순간 찾아오는 외로움과 고독함을 스스로 또는 타인의 도움으로든 이겨내는 이야기가 사랑이고 진정한 구원이겠구나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 조심하세요 그들에게서 인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로운 자들을 홀로 두지 않는 거에요.
수연은 자신의 삶에 충실해 보이지만 내면에 고통과 외로움을 갖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글을 통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가장 대단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한낮 먼지 같은 존재임을 알고 세상에 권태를 느끼지 않고 시선을 바꿀때 당신은 뱀파이어와의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