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소설 랑과 나의 사막
책표지 제목만 보고서도 아련한 뭉클함이 올라오곤 하더니 결국 천선란의 sf 소설을 읽으면서도 눈물이 나면 어쩌자는 건지 당황스럽기는 한데 슬픔의 형태는 아니니 공감이라고 해두어야겠다. 천선란 작가의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를 읽고 꽤 생각이 많은 작가이고 간결한 글 구성이 나름 맘에 들었던 기억으로 그쳐 있었는데 '랑과 나의 사막'은 미처 몰랐던 천선란 작가의 감성이 미친 듯 폭발한 글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치 작가는 전력을 다해 머랭 치기를 한 것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꾸준히 읽어 오고 있는 SF 소설에서 인류의 희망을 보기도 하고 두려움과 염려로 머리를 흔들며 가슴을 쓸어내릴만큼 재미와 긴장을 동시에 갖고 접하곤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SF 소설들의 주제나 접근 방식이 당연하거나 조금은 식상하지 않나 단정 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위에서 오늘 만난 '랑과 나의 사막'은 꺼져가는 내 흥미와 의식의 불씨를 되살리기에 충분했고 3자의 입장에서 보는 미래가 아닌 내가 주인공이 되었을 때 내가 걱정하고 겪을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을 만났구나 생각되었다.
인간의 전쟁으로 멸망한 세계에서 고장난 로봇을 발견하여 수리하여 고고라는 이름을 붙여 준 인간 랑이 죽었다. 랑의 장례를 치르면서 가족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고고다. 로봇 프로그램으로는 정의되지 않는 가족이란 이름이 가진 진한 감정을 고고는 이미 랑에게 전염되듯 배워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인간 지카가 함께 떠날 것을 권하지만 고고는 랑이 가고 싶어 했던 과거로 가는 길을 찾아 홀로 떠나며 고고는 여행길에서 자신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고민하고 찾는 동시에 삶의 목적을 계속 그리게 된다. 목적을 찾게 된 근본은 그리움이란 것을 알지만 판단하지 못하고 혼돈스러워하는 고고. 로봇에게 죽음과 그리움, 회상, 삶의 목적 등은 낯선 단어이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깊이를 느끼지 못할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고고의 표현들은 이미 로봇을 넘어선 가족으로 반려자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들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이다 아니다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지 꽤 오래이다. 작가의 말처럼 누군가 머물다간 자리에 계속 물을 붓는 마음을, 그런 상태와 그런 사람과 삶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나도 계속해 왔음을 공감한다. 고고는 이미 인간 외 분류로 나뉠 뿐 랑과의 시간이 계속되지 못함을 아파하고 그리워하고 랑과의 추억을 생각하며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그리움이란 감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
감정은 인간이 가진 특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실제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 한켠에는 고고와 같이 소통되는 로봇의 미래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고는 부식되고 망가지고 서서히 고장날것을 알지만 과거 랑과의 추억이 있는 길로 모래폭풍을 건너가는 고고의 발자취에서 암울한 미래대신 희망을 이야기해본다. 상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져보는 고고의 모습에서 가장 인간적인 로봇의 모습을 본다.
천선란 작가의 '랑과 나의 사막'은 로봇을 이야기하지만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여서 참 따뜻하다.
현재나 미래나 마음이 중요하다는걸 잊지 않아야겠다.